이달 책
역사와 종말론: 예수 그리고 자연신학의 가능성
(History and Eschatology: Jesus and the Promise of Natural Theology)
- 톰 라이트 지음 / 송일 옮김 / IVP -
글 | 정삼희
과학과신학의대화 이사
신도중앙교회 담임 목사

톰 라이트와 기포드 강연
『역사와 종말론』은 톰 라이트가 2018년 강의한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을 단행본으로 출판한 책입니다. 기포드 강연은 자연과 이성을 통한 신 인식 문제를 관건으로 하는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의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1888년부터 시작된 전통 있는 신학 강연입니다. 이 강연의 130년 넘는 역사에서 성서학자의 이름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연신학 논의는 예수와 성경을 계시의 한 부분으로 간주함으로써 그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약학자 톰 라이트는 “자연신학은 무엇이고 성서학자는 자연신학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도합니다.
신에피쿠로스주의(Neoepicureanism)와 레싱의 도랑(Lessing's Ditch)
톰 라이트는 18세기 계몽주의 이래 주류 학자들이 자연과 초자연,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분리하고 성경과 예수를 자연신학에서 배제한 것, 그리고 역사와 하나님의 관계를 왜곡한 것을 비판합니다. 그는 계몽주의가 신들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을 분리한 에피쿠로스주의를 부활시켰고, 과거에 일어났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오늘날 믿어야 할 절대적 진리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레싱의 도랑’이 그 대표적 상징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사조와 자연신학의 방법론의 부당함을 비판하면서 라이트는 말합니다. “만일 예수가 자연 세계 내에 존재했던 진짜 인간이라면, 그리고 만일 성경이 실제로 인간의 책이라면, 우리는 처음부터 예수와 성경을 탐구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
제2성전기 신학
이를 위해 라이트가 제안하는 방법론은 한마디로 예수를 그 당시의 역사적 세계 안에 그리고 유대교의 상징적 세계 안에 새롭게 배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이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공존하는 창조 세계의 갱신임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는 제2성전기 신학의 세 단어에 집중하는데, ‘성전’, ‘안식일’, ‘인간’입니다. 우선 성전은 하늘과 땅이 겹쳐있는 공간적 교차점입니다. 이는 고대와 근대의 에피쿠로스주의가 주장하는 분열된 세계관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시간적으로 안식일은 현재와 이 현재에 임할 것으로 기대되는 다가올 시대가 만나는 시간적 교차점입니다. 이는 하늘나라의 도래를 위해 먼저 이 땅이 없어져야 한다는 모든 제안을 반박합니다. 끝으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론적 교차점입니다. 인간의 소명이 창조주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통치론적 교차점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세계관과 인간 이해만으로도 신에피쿠로스주의적 세계관은 거부됩니다.

@사진 By Ariely - 자작,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533576
더구나 예수의 부활은 이 실제 세계를 새롭게 했습니다. 톰 라이트는 예수의 부활을 유대인, 특별히 제2성전기 신학을 기준으로 성찰해야 함을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부활은 에피쿠로스주의자에게는 불가능하고, 플라톤주의자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하고, 이신론자들에게는 불필요하고, 범신론자에게는 의미가 없으며, 황제에게는 두려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로운 시간’이 현재에 도래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날이 하나님 나라의 날이 되었고, 특히 한 주의 첫날, 우리가 ‘주일’로 지키는 날은 새 창조의 분위기와 주제를 머금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고백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일은 모든 시간의 거룩함을 미리 맛보고 선언하는 날입니다. 우주론에서도 새로운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예수의 몸이 새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막과 성전이 모든 창조 세계를 결국 자신의 영광으로 채우겠다는 창조주의 의도를 상징하는 ‘작은 세계’로서 기능했듯이, 이제 예수와 성령도 하나님이 모든 창조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하실지 미리 지시하는 표지와 전조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전 우주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망이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미리 내다보는 대표적인 신약의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어 인류학은 어떻습니까? 누구도 하늘과 땅이 한 인간 안에서 합쳐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형상 소지자이신 예수 자신이 그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더구나 이제 인간은 그 안에 하나님께서 내주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은 전 창조 세계를 향한 창조주의 구속적ㆍ변혁적 사랑을 드러내면서 전체론적 지식 양식, 즉 실제 세계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포함하는 일종의 지식을 위한 공간과 시간을 새롭게 열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통찰이 오늘 우리의 현실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까요?
망가진 이정표(Broken signposts)
라이트는 인간의 삶에는 모든 문화와 시대에 걸쳐 발견되는 일곱 가지 특징, 그가 ‘소명 이정표(vocational signpost)’라 부르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제안합니다. 정의(Justice), 아름다움(Beauty), 자유(Freedom), 진리(Truth), 권력(Power), 영성(Spirituality), 관계(Relationships). 문제는 인류가 이 이정표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 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를 억압으로, 아름다움을 저질 예술로, 자유를 외설로, 진리를 가짜 뉴스로, 권력을 괴롭힘으로, 영성을 자아 탐구 또는 자기만족으로, 관계로의 부름을 착취의 구실로 쉽게 바꿉니다. 그런 면에서 이 일곱 개의 소명 이정표는 ‘망가진 이정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망가진 이정표를 성경과 어떻게 연결해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부활이 현실을 새롭게 보게 하는 지점임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그 ‘부활’을 경험하신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나셨고, 그 직후 예루살렘에 머물던 제자들을 만나셔서 구약 성경을 다시 읽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활이 그동안의 모든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회고적 검증(retrospective validation)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망가진 이정표들을 살펴보면, 가장 궁극적으로 망가진 이정표가 십자가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가 정죄 받을 때 정의가 거부되었습니다. 자유의 희망이 묵살당했습니다. 유효한 힘은 폭력뿐이었습니다. 현실 정치(Realpolitik)가 진리를 삼켜 버렸습니다. 아름다움이 짓밟혔습니다. 영성이 유기되었습니다. 사랑은 배신당하고, 조롱당하며, 죽임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은 그 모든 이정표들이 망가진 상태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음을 회고적으로 검증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을 알고, 그 부활을 사는 사람들을 통해 이 일곱 개의 이정표는 수리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창조와 새 창조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참된 이정표 역할을 하는 현상들이 실제의 자연스러운 공적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진: Unsplash의 Marek Studzinski
대기 중인 성배(the Waiting Chalice)
톰 라이트는 ‘빈 성배’라는 이미지로 자연신학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설명합니다. 빈 성배는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이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 이 빈 성배는 몇 배 더 아름다운데, 그 이유는 이 빈 성배가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은 빈 성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경외와 존경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공포와 고통, 그리고 명백한 무익함-망가진 상태의 이정표들-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과 슬프게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 아름다움을 인식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현재 시공간의 아름다움이 다른 빛에 의해 드리워진 그림자라고 설명하고 그것들의 근원에 도달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고, 서구 기독교의 상당 부분이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제안에 동의해 왔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성배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을 이교도들처럼 부, 권력, 특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어 하는 자들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 자연신학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라이트는 분명하게 주장합니다. “정답은 그 성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만찬을 기념하는 것이다.”
자연신학과 하나님의 선교
이렇게 톰 라이트는 성경의 내용과 종말론이 제대로 반영된 자연신학이 새 창조 세계의 탐구를 통해 그리고 새 창조 세계가 원 창조 세계에 비추는 빛을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제안합니다. 따라서 자연신학은 하나님의 선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 창조 세계가 중요하므로 현 창조 세계는 바로 잡을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총체적 선교라 부르는 영역과 자연신학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톰 라이트는 예술, 과학, 정치, 성례전 등이 어떻게 자연신학에서 출발해서 하나님의 선교와 연결될 수 있는지에 관한 큰 그림을 그려주면서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결론적으로 실제 역사는 하나님이 참으로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신 곳이자 인간이 그분을 온전한 인격체로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고백 위에 형성된 공동체는 성령이 가져온 부활한 예수의 몸으로서, 그리고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부활한 예수의 몸으로서, 새 창조 세계와 여명을 분별할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드러날 새로운 창조 세계, 곧 장차 올 종말에 대한 기념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톰 라이트가 주장하는 역사와 종말론의 결합입니다. 이렇게 예수에 대한 진정한 이야기는 참되고, 급진적으로 재정의된,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싹 틔우게 됩니다.

@사진: Unsplash의 Aaron Burden
이렇게 라이트는 이성과 자연이 아니라 성경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관점의 자연신학 전망을 제시합니다. 그는 예수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창조 세계의 종말론적 갱신을 의미하는 예수의 부활에 근거해, 서로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성경’과 ‘자연신학’을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성경적 자연신학의 전망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서평은 “바울에 대한 새 관점으로 유명한 톰 라이트가 이 책에서는 자연신학에 대한 새 관점을 제시한다”라고 평가합니다. 끝으로 예수의 역사를 자연신학 논의에 포함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기포드 강연을 비롯한 자연신학 논의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고 있고 미칠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과제, 그리고 이 주장이 우리의 목회와 영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관한 토론을 제안하며 글을 마칩니다.
이달 책
역사와 종말론: 예수 그리고 자연신학의 가능성
(History and Eschatology: Jesus and the Promise of Natural Theology)
- 톰 라이트 지음 / 송일 옮김 / IVP -
글 | 정삼희
과학과신학의대화 이사
신도중앙교회 담임 목사
톰 라이트와 기포드 강연
『역사와 종말론』은 톰 라이트가 2018년 강의한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을 단행본으로 출판한 책입니다. 기포드 강연은 자연과 이성을 통한 신 인식 문제를 관건으로 하는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의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1888년부터 시작된 전통 있는 신학 강연입니다. 이 강연의 130년 넘는 역사에서 성서학자의 이름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연신학 논의는 예수와 성경을 계시의 한 부분으로 간주함으로써 그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약학자 톰 라이트는 “자연신학은 무엇이고 성서학자는 자연신학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도합니다.
신에피쿠로스주의(Neoepicureanism)와 레싱의 도랑(Lessing's Ditch)
톰 라이트는 18세기 계몽주의 이래 주류 학자들이 자연과 초자연,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분리하고 성경과 예수를 자연신학에서 배제한 것, 그리고 역사와 하나님의 관계를 왜곡한 것을 비판합니다. 그는 계몽주의가 신들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을 분리한 에피쿠로스주의를 부활시켰고, 과거에 일어났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오늘날 믿어야 할 절대적 진리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레싱의 도랑’이 그 대표적 상징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사조와 자연신학의 방법론의 부당함을 비판하면서 라이트는 말합니다. “만일 예수가 자연 세계 내에 존재했던 진짜 인간이라면, 그리고 만일 성경이 실제로 인간의 책이라면, 우리는 처음부터 예수와 성경을 탐구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
제2성전기 신학
이를 위해 라이트가 제안하는 방법론은 한마디로 예수를 그 당시의 역사적 세계 안에 그리고 유대교의 상징적 세계 안에 새롭게 배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이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공존하는 창조 세계의 갱신임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는 제2성전기 신학의 세 단어에 집중하는데, ‘성전’, ‘안식일’, ‘인간’입니다. 우선 성전은 하늘과 땅이 겹쳐있는 공간적 교차점입니다. 이는 고대와 근대의 에피쿠로스주의가 주장하는 분열된 세계관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시간적으로 안식일은 현재와 이 현재에 임할 것으로 기대되는 다가올 시대가 만나는 시간적 교차점입니다. 이는 하늘나라의 도래를 위해 먼저 이 땅이 없어져야 한다는 모든 제안을 반박합니다. 끝으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론적 교차점입니다. 인간의 소명이 창조주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통치론적 교차점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세계관과 인간 이해만으로도 신에피쿠로스주의적 세계관은 거부됩니다.
@사진 By Ariely - 자작,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533576
더구나 예수의 부활은 이 실제 세계를 새롭게 했습니다. 톰 라이트는 예수의 부활을 유대인, 특별히 제2성전기 신학을 기준으로 성찰해야 함을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부활은 에피쿠로스주의자에게는 불가능하고, 플라톤주의자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하고, 이신론자들에게는 불필요하고, 범신론자에게는 의미가 없으며, 황제에게는 두려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로운 시간’이 현재에 도래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날이 하나님 나라의 날이 되었고, 특히 한 주의 첫날, 우리가 ‘주일’로 지키는 날은 새 창조의 분위기와 주제를 머금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고백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일은 모든 시간의 거룩함을 미리 맛보고 선언하는 날입니다. 우주론에서도 새로운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예수의 몸이 새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막과 성전이 모든 창조 세계를 결국 자신의 영광으로 채우겠다는 창조주의 의도를 상징하는 ‘작은 세계’로서 기능했듯이, 이제 예수와 성령도 하나님이 모든 창조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하실지 미리 지시하는 표지와 전조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전 우주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망이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미리 내다보는 대표적인 신약의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어 인류학은 어떻습니까? 누구도 하늘과 땅이 한 인간 안에서 합쳐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형상 소지자이신 예수 자신이 그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더구나 이제 인간은 그 안에 하나님께서 내주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은 전 창조 세계를 향한 창조주의 구속적ㆍ변혁적 사랑을 드러내면서 전체론적 지식 양식, 즉 실제 세계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포함하는 일종의 지식을 위한 공간과 시간을 새롭게 열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통찰이 오늘 우리의 현실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까요?
망가진 이정표(Broken signposts)
라이트는 인간의 삶에는 모든 문화와 시대에 걸쳐 발견되는 일곱 가지 특징, 그가 ‘소명 이정표(vocational signpost)’라 부르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제안합니다. 정의(Justice), 아름다움(Beauty), 자유(Freedom), 진리(Truth), 권력(Power), 영성(Spirituality), 관계(Relationships). 문제는 인류가 이 이정표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 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를 억압으로, 아름다움을 저질 예술로, 자유를 외설로, 진리를 가짜 뉴스로, 권력을 괴롭힘으로, 영성을 자아 탐구 또는 자기만족으로, 관계로의 부름을 착취의 구실로 쉽게 바꿉니다. 그런 면에서 이 일곱 개의 소명 이정표는 ‘망가진 이정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망가진 이정표를 성경과 어떻게 연결해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부활이 현실을 새롭게 보게 하는 지점임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그 ‘부활’을 경험하신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나셨고, 그 직후 예루살렘에 머물던 제자들을 만나셔서 구약 성경을 다시 읽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활이 그동안의 모든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회고적 검증(retrospective validation)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망가진 이정표들을 살펴보면, 가장 궁극적으로 망가진 이정표가 십자가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가 정죄 받을 때 정의가 거부되었습니다. 자유의 희망이 묵살당했습니다. 유효한 힘은 폭력뿐이었습니다. 현실 정치(Realpolitik)가 진리를 삼켜 버렸습니다. 아름다움이 짓밟혔습니다. 영성이 유기되었습니다. 사랑은 배신당하고, 조롱당하며, 죽임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은 그 모든 이정표들이 망가진 상태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음을 회고적으로 검증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을 알고, 그 부활을 사는 사람들을 통해 이 일곱 개의 이정표는 수리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창조와 새 창조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참된 이정표 역할을 하는 현상들이 실제의 자연스러운 공적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진: Unsplash의 Marek Studzinski
대기 중인 성배(the Waiting Chalice)
톰 라이트는 ‘빈 성배’라는 이미지로 자연신학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설명합니다. 빈 성배는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이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 이 빈 성배는 몇 배 더 아름다운데, 그 이유는 이 빈 성배가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은 빈 성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경외와 존경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공포와 고통, 그리고 명백한 무익함-망가진 상태의 이정표들-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과 슬프게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 아름다움을 인식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현재 시공간의 아름다움이 다른 빛에 의해 드리워진 그림자라고 설명하고 그것들의 근원에 도달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고, 서구 기독교의 상당 부분이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제안에 동의해 왔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성배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을 이교도들처럼 부, 권력, 특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어 하는 자들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 자연신학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라이트는 분명하게 주장합니다. “정답은 그 성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만찬을 기념하는 것이다.”
자연신학과 하나님의 선교
이렇게 톰 라이트는 성경의 내용과 종말론이 제대로 반영된 자연신학이 새 창조 세계의 탐구를 통해 그리고 새 창조 세계가 원 창조 세계에 비추는 빛을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제안합니다. 따라서 자연신학은 하나님의 선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 창조 세계가 중요하므로 현 창조 세계는 바로 잡을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총체적 선교라 부르는 영역과 자연신학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톰 라이트는 예술, 과학, 정치, 성례전 등이 어떻게 자연신학에서 출발해서 하나님의 선교와 연결될 수 있는지에 관한 큰 그림을 그려주면서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결론적으로 실제 역사는 하나님이 참으로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신 곳이자 인간이 그분을 온전한 인격체로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고백 위에 형성된 공동체는 성령이 가져온 부활한 예수의 몸으로서, 그리고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부활한 예수의 몸으로서, 새 창조 세계와 여명을 분별할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드러날 새로운 창조 세계, 곧 장차 올 종말에 대한 기념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톰 라이트가 주장하는 역사와 종말론의 결합입니다. 이렇게 예수에 대한 진정한 이야기는 참되고, 급진적으로 재정의된,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싹 틔우게 됩니다.
@사진: Unsplash의 Aaron Burden
이렇게 라이트는 이성과 자연이 아니라 성경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관점의 자연신학 전망을 제시합니다. 그는 예수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창조 세계의 종말론적 갱신을 의미하는 예수의 부활에 근거해, 서로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성경’과 ‘자연신학’을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성경적 자연신학의 전망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서평은 “바울에 대한 새 관점으로 유명한 톰 라이트가 이 책에서는 자연신학에 대한 새 관점을 제시한다”라고 평가합니다. 끝으로 예수의 역사를 자연신학 논의에 포함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기포드 강연을 비롯한 자연신학 논의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고 있고 미칠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과제, 그리고 이 주장이 우리의 목회와 영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관한 토론을 제안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