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책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
- 피터 엔스 지음 / 노동래 번역 / 새물결플러스 -
글 | 김양현
과신뷰 편집장
기독인문연구소 시시당 대표

피터 엔스의 신작이 소개되었다. 전작 「성경너머로 성경읽기」가 성경 텍스트의 기록과 생성과정에 집중되었다면 이번 책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는 일종의 변증서에 가깝다.
피터 엔스가 강조하는 지점은 두 가지다. 우선 그는 성경 텍스트를 우리의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고대의 관점, 즉 성경을 처음 받았던 1차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읽을 것을 강조한다. 이는 대부분의 복음주의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구약학자 존 월튼 역시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의 텍스트는 그 시대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문화적 강줄기(Cultural River)를 잘 이해하라고 말한다. 즉 창세기가 쓰여질 당시의 고대 세계를 관통하는 문화적 흐름 안에서 창세기가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주전 15세기의 첫 청자인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빅뱅 이론도 몰랐으며, 유전학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물리학도 알지 못했고 지구과학도 몰랐다. 그들은 하늘에 천구가 있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은 거기에 앉아 계시며 그곳에서 문을 열어 비를 내려주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해 수준에서 하나님은 창세기 말씀을 주셨다.
피터 엔스는 이런 경향을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신다고 표현한다. 청자인 나는 직구를 기다리고 타격자세를 취하지만 하나님은 커브로 볼을 던지신다. 예상 못 한 청자는 헛스윙을 한다. 그다음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타격 자세를 교정하는 것이지 투수에게 직구를 던지라고 해서는 안 된다. 피터 엔스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커브 볼처럼 다가온다고 강조한다.
우선 창세기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당시 사회의 주요한 이해구조 속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당대의 주류 문화권 속에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도 당대의 이해구조 방식으로 계시하셨다.
"이 대목에서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의 시대에 우주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방식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런 설명을 당시의 "과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들은 자기들의 특정한 믿음들을 반영하기 위해 그런 보편적인 설명을 수정하여 글로 남겼다...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합의된 우주 개념을 채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하나님 담론은 무시당했을 것이다. 그들이 당시의 보편적인 지식과 연결하지 않고 단순히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면, 그들은 소의 귀에 대고 말하는 격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시 이집트인, 바벨론 사람들 등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창조 이야기를 주셨다. 그래야 그들과 대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피터 엔스의 주장은 한 가지를 더한다. 고대 사람들의 이해구조에서 말씀하시지만 그들의 신화나 창조 이야기를 수정하시고 하나님의 창조의 진실을 선언하신다. 즉 에누마엘리시나 아트라하시스의 창조 신화는 틀린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가 옳다고 변증 하신다. 형식은 가져오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사진: Unsplash의 Daniela Turcanu
피터 엔스는 이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기와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 제국의 지배하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동시에 제국들의 문화와 신화에 대하여 자신들의 믿음을 변증하기 위해 성경을 책으로 구성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열왕기와 역대기의 관점 차이다. 두 책 모두 이스라엘의 왕들을 다루지만, 열왕기는 바벨론 포로 치하에서 이스라엘 왕들의 죄를 중점으로 다루고, 역대기는 포로 이후 성전 건축이라는 쟁점을 다룬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 왕들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하고 정경으로 구성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런 방식을 허용해 주신다.
커브볼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구약을 재정의하셨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자주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이렇게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즉 예수님은 구약 말씀을 가져와서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하시고 재정의하셨다. 그렇게 복음서가 탄생하고 서신서들이 나왔다. 특히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은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본문인 ‘70인 역’을 주로 인용하면서 당대의 철학과 변증했다. 당대의 스토아학파가 주로 사용한 용어인 ‘로고스’를 요한은 가져와서 예수님에게 적용했다. 이런 점을 피터 엔스는 커브볼로 묘사한다.
드디어 피터 엔스는 현대적 관점으로 온다. 고대 구약 텍스트들이 바벨론 제국이나 페르시아 제국의 신화들과 변증하고 신약이 그리스의 철학과 변증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현대 과학과 변증해야 한다는 것이 피터 엔스의 주장이다. 오늘날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했다. 특히 20세기는 과학의 폭발적 발견이 이루어진 세기다. 유전학에서 게놈 지도 분석이라는 업적을 이루었고, 물리학에서는 양자역학을 도입했으며, 천문학에서는 우주의 신비를 밝히고 있다.
이런 과학의 발견에서 성경 본문에 대한 세 가지 반응이 나온다. 하나는 리차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적 반응이다. 즉 고대의 텍스트들이 오늘날 과학에 맞지 않기에 그것은 허구요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런 반응에 도전하기 위해 창조 과학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창조과학은 말 그대로 성경의 계시가 과학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다. 피터 엔스에 의하면 두 가지 모두 성경 텍스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성경이 고대의 과학(?) 구조 속에서 기록되었고 그들의 이해구조를 반영했다는 것을 간과한 채 오늘날의 과학에 대입한 것이다. 성경은 현대의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사진: Unsplash의 Josh Hemsley
따라서 피터 엔스는 이러한 커브볼 앞에서 직구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타격 자세를 수정하자고 제안한다. 우선은 성경 텍스트를 그 시대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고, 이어서 오늘날 과학의 발견이 우리의 신학적 이해를 더욱 정교하게 하며 풍성하게 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현대 과학은 우주의 연대를 약 139억년으로 추정한다. 빅뱅이라 부르는 대 폭발 이후 온도가 식으면서 밀도 차이가 발생했고, 수소와 헬륨의 작용으로 탄소 등이 만들어지며 중력에 의해 별이 만들어졌다. 이후 초신성 등의 폭발로 은하계가 형성되었고 오늘날 우리의 태양계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창조해 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광대하시고 놀라운 분 아니신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자기들의 과학을 가지고 작업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을 통해 작업해야 하며,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이 하나님에 관해 말하기 위한 단어들을 발견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우리의 하나님 이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중력에 의해 상대적이다. 우주 공간에서 시간은 상대적이며 공간도 중력에 의해 휘어진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시간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시간 지연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아울러 양자역학에서 발견한 양자 얽힘도 흥미롭다. 이론적으로 한 번 관계가 형성된 광자 두 개는 물리적으로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동시에 반응한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편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커브 볼을 던지신다. 이는 우리를 혼란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해를 돕고자 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직구를 던지라 요구할 것이 아니라(문자주의), 우리의 자세를 수정함으로(기독교 변증) 이 시대에 필요한 신학을 해야 할 것이다. 과학의 발견을 부정하고 배격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학 이해의 도구로 삼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이 시대에 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하려는 작업이다. 피터 엔스의 책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도 이런 고민의 반영이다.
이달 책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
- 피터 엔스 지음 / 노동래 번역 / 새물결플러스 -
글 | 김양현
과신뷰 편집장
기독인문연구소 시시당 대표
피터 엔스의 신작이 소개되었다. 전작 「성경너머로 성경읽기」가 성경 텍스트의 기록과 생성과정에 집중되었다면 이번 책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는 일종의 변증서에 가깝다.
피터 엔스가 강조하는 지점은 두 가지다. 우선 그는 성경 텍스트를 우리의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고대의 관점, 즉 성경을 처음 받았던 1차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읽을 것을 강조한다. 이는 대부분의 복음주의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구약학자 존 월튼 역시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의 텍스트는 그 시대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문화적 강줄기(Cultural River)를 잘 이해하라고 말한다. 즉 창세기가 쓰여질 당시의 고대 세계를 관통하는 문화적 흐름 안에서 창세기가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주전 15세기의 첫 청자인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빅뱅 이론도 몰랐으며, 유전학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물리학도 알지 못했고 지구과학도 몰랐다. 그들은 하늘에 천구가 있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은 거기에 앉아 계시며 그곳에서 문을 열어 비를 내려주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해 수준에서 하나님은 창세기 말씀을 주셨다.
피터 엔스는 이런 경향을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신다고 표현한다. 청자인 나는 직구를 기다리고 타격자세를 취하지만 하나님은 커브로 볼을 던지신다. 예상 못 한 청자는 헛스윙을 한다. 그다음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타격 자세를 교정하는 것이지 투수에게 직구를 던지라고 해서는 안 된다. 피터 엔스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커브 볼처럼 다가온다고 강조한다.
우선 창세기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당시 사회의 주요한 이해구조 속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당대의 주류 문화권 속에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도 당대의 이해구조 방식으로 계시하셨다.
"이 대목에서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의 시대에 우주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방식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런 설명을 당시의 "과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들은 자기들의 특정한 믿음들을 반영하기 위해 그런 보편적인 설명을 수정하여 글로 남겼다...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합의된 우주 개념을 채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하나님 담론은 무시당했을 것이다. 그들이 당시의 보편적인 지식과 연결하지 않고 단순히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면, 그들은 소의 귀에 대고 말하는 격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시 이집트인, 바벨론 사람들 등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창조 이야기를 주셨다. 그래야 그들과 대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피터 엔스의 주장은 한 가지를 더한다. 고대 사람들의 이해구조에서 말씀하시지만 그들의 신화나 창조 이야기를 수정하시고 하나님의 창조의 진실을 선언하신다. 즉 에누마엘리시나 아트라하시스의 창조 신화는 틀린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가 옳다고 변증 하신다. 형식은 가져오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사진: Unsplash의 Daniela Turcanu
피터 엔스는 이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기와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 제국의 지배하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동시에 제국들의 문화와 신화에 대하여 자신들의 믿음을 변증하기 위해 성경을 책으로 구성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열왕기와 역대기의 관점 차이다. 두 책 모두 이스라엘의 왕들을 다루지만, 열왕기는 바벨론 포로 치하에서 이스라엘 왕들의 죄를 중점으로 다루고, 역대기는 포로 이후 성전 건축이라는 쟁점을 다룬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 왕들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하고 정경으로 구성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런 방식을 허용해 주신다.
커브볼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구약을 재정의하셨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자주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이렇게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즉 예수님은 구약 말씀을 가져와서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하시고 재정의하셨다. 그렇게 복음서가 탄생하고 서신서들이 나왔다. 특히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은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본문인 ‘70인 역’을 주로 인용하면서 당대의 철학과 변증했다. 당대의 스토아학파가 주로 사용한 용어인 ‘로고스’를 요한은 가져와서 예수님에게 적용했다. 이런 점을 피터 엔스는 커브볼로 묘사한다.
드디어 피터 엔스는 현대적 관점으로 온다. 고대 구약 텍스트들이 바벨론 제국이나 페르시아 제국의 신화들과 변증하고 신약이 그리스의 철학과 변증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현대 과학과 변증해야 한다는 것이 피터 엔스의 주장이다. 오늘날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했다. 특히 20세기는 과학의 폭발적 발견이 이루어진 세기다. 유전학에서 게놈 지도 분석이라는 업적을 이루었고, 물리학에서는 양자역학을 도입했으며, 천문학에서는 우주의 신비를 밝히고 있다.
이런 과학의 발견에서 성경 본문에 대한 세 가지 반응이 나온다. 하나는 리차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적 반응이다. 즉 고대의 텍스트들이 오늘날 과학에 맞지 않기에 그것은 허구요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런 반응에 도전하기 위해 창조 과학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창조과학은 말 그대로 성경의 계시가 과학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다. 피터 엔스에 의하면 두 가지 모두 성경 텍스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성경이 고대의 과학(?) 구조 속에서 기록되었고 그들의 이해구조를 반영했다는 것을 간과한 채 오늘날의 과학에 대입한 것이다. 성경은 현대의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사진: Unsplash의 Josh Hemsley
따라서 피터 엔스는 이러한 커브볼 앞에서 직구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타격 자세를 수정하자고 제안한다. 우선은 성경 텍스트를 그 시대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고, 이어서 오늘날 과학의 발견이 우리의 신학적 이해를 더욱 정교하게 하며 풍성하게 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현대 과학은 우주의 연대를 약 139억년으로 추정한다. 빅뱅이라 부르는 대 폭발 이후 온도가 식으면서 밀도 차이가 발생했고, 수소와 헬륨의 작용으로 탄소 등이 만들어지며 중력에 의해 별이 만들어졌다. 이후 초신성 등의 폭발로 은하계가 형성되었고 오늘날 우리의 태양계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창조해 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광대하시고 놀라운 분 아니신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자기들의 과학을 가지고 작업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을 통해 작업해야 하며,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이 하나님에 관해 말하기 위한 단어들을 발견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우리의 하나님 이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중력에 의해 상대적이다. 우주 공간에서 시간은 상대적이며 공간도 중력에 의해 휘어진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시간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시간 지연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아울러 양자역학에서 발견한 양자 얽힘도 흥미롭다. 이론적으로 한 번 관계가 형성된 광자 두 개는 물리적으로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동시에 반응한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편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커브 볼을 던지신다. 이는 우리를 혼란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해를 돕고자 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직구를 던지라 요구할 것이 아니라(문자주의), 우리의 자세를 수정함으로(기독교 변증) 이 시대에 필요한 신학을 해야 할 것이다. 과학의 발견을 부정하고 배격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학 이해의 도구로 삼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이 시대에 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하려는 작업이다. 피터 엔스의 책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도 이런 고민의 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