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 사이에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과학기술문명이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 시대에 프랜시스 콜린스가 말하는 ‘지혜’는 경계선을 허물고 초월할 수 있어 보인다. 콜린스는 서문에서부터 ‘지혜’가 유일한 삶의 지침이었음을 고백한다. 콜린스에게 ‘지혜’가 없었다면 유전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과학자로서의 명성과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과학의 한계와 종교의 반대증명을 밝히기 위해 성서를 연구하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삶에는 ‘과학’과 ‘신앙’이라는 두 가지 영역이 공존하게 되었다.
“과학과 신앙의 역사적 관계는 생각만큼 험난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콜린스는 진리를 추구했고, 과학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을 질병에서 구해냈다. 그의 삶 자체가 과학과 신앙의 끊임없는 만남이었다. 그는 신앙을 가지면서도 과학적인 방법인 회의적인 방법으로 계속 질문했다고 밝힌다. 신앙은 아무 저항 없이 무조건으로 가지는 관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하는 이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콜린스가 참여했던 게놈프로젝트에서 밝혀낸 진실은 모든 인종이 한 조상이라는 것이다. 콜린스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과학과 신앙 사이에 큰 갈등을 일으킨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과학이 밝혀낸 인류기원의 비밀은 성서에 기록된 것을 증명하였다.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1950-). @NIV.org
역사적으로 과학과 신앙은 갈등 관계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지만, 콜린스는 자신이 경험한 게놈프로젝트를 통해서 인간기원에 대한 종교적 궁금증도 해소하게 되었으므로 갈등 관계가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상생하는 관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콜린스의 바람은 모든 인간이 하나의 공통된 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수 천 년 동안 우리를 괴롭혀온 갈등과 편견을 줄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창조과학과 같은 잘못된 방식으로 과학을 이용하여 성서를 증명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낸다. 콜린스는 과학이 암, 팬데믹,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과학이 때로는 인류가 원하는 다른 결론이나, 신이 원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과학은 스스로 교정하는 특성을 통해 객관적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며, 이는 우리의 공동 미래를 위한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는 능력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의사, 과학자, 그리고 질병을 통제하는 국립보건원장을 역임한 그의 이력과 경험을 미루어볼 때, 설득력을 가진다.
이 책은 과학과 신앙을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하지 않는다. 콜린스의 삶 자체가 두 가지 영역이 공존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콜린스는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신뢰’를 제시한다. ‘신뢰’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때문에 혼란한 이 시대에 무엇을 믿을 것인가? 확실한 결과 값을 도출하는 AI의 해답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초월’로 바꾸는 신앙을 믿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콜린스는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무엇이 진리이고 신뢰할 만한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공통된 기준과 과정을 발전시켜 왔고, 진리는 과학적 발견에서 나오기도 하고, 신앙과 도덕적 가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과학과 신앙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경계를 허물고 경계 너머의 ‘초월적인 존재’인 ‘지혜’를 제시한다. 잘못된 정보와 허위 정보, 두려움과 분노가 우리 사회를 분열되게 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지혜’만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콜린스가 제시하는 치유의 메시지는 ‘희망’이다. 신앙과 과학 어느 부분에도 치우치지 않고 두 영역 경계선을 넘어서는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무신론적 과학의 관점으로 접근해도 결국 필요한 것은 진리이며, 진리의 상위 영역이 바로 ‘지혜’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관점을 가지고 ‘초월’의 영역에서 접근해도 필요한 것이 진리이다. 두 영역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비슷하다. 이제 두 영역의 경계선을 허물고 경계선 너머에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는 ‘지혜’는 ‘초월자’이다. 초월자가 인간에게 주는 ‘지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종교와 과학의 양립을 바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선’ 너머에 있는 ‘초월’이 보일 것이다.
지혜를 잃어버린 시대, 다시 길을 묻다 『지혜가 필요한 시간』을 읽고
글ㅣ강상훈 이스턴일리노이대학 생물학과 교수 과신대 정회원, 자문위원 샤르댕북클럽 멤버
생물학을 전공하여 업으로 삼고 있는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Francis Collins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포스트닥을 하던 시절 출판되었던 The Language of God(신의 언어)을 읽고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던 경험이 있고, 그 이후에도 전공 분야가 겹치지 않음에도 계속 접하게 되는 행보들, 특히 BioLogos 재단 설립과 NIH 원장이 되어 COVID-19 pandemic 초기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저 한 발 앞만 겨우 보면서 나아가는 상황을 앞서서 헤쳐가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영감이 되는 분이다. 이 책은 지난 수십 년간 특히 미국에서 지속되어 온, 그러나 바로 그 COVID-19 pandemic 시기에 본격적으로 파괴적인 힘을 발휘했던 음모론과 가짜뉴스로 인류 문명이 축적해 온 지혜를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시대적 절망에 용감히 저항하는 노력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비록 선도적인 개인이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이긴 하지만, 지혜로운 인간(Homo sapiens)이라는 공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종의 실존적인 위기상황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기후 위기 문제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로서, 미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climate deniers(기후위기 부정론자)와 anti-vaxxers(백신 음모론자)들을 상대하면서 겪는 절망감이 누적되어 이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게 되었기에 더욱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쳐 들었다.
@Unsplash, DJ Paine
이 책의 원제가 의미하듯이 저자는 지혜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지혜로 향하는 길을 저자가 지혜의 원천으로 밝힌 진리, 과학, 신앙, 신뢰를 논의하면서 제시하고, 특별히 마지막 장에서 실천적인 제안을 한다. 이미 창조주의자들의 해악을 해소하기 위해서 BioLogos 재단을 설립한 전력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름다운 말로 가득한 책을 하나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 과학자의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일관성 있는 산물이다. 진리에 관한 2장에서 저자는 다양한 수준의 진리와 콰인(Quine)이라는 철학자가 제시한 신념의 거미줄이라는 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악의적으로 남용하여 의견과 진리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려는 극우적 음모론자들의 시도를 진단한다. 증거와 논리에 기반한 사고에 익숙한 과학자로서 alternative facts(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로 가상의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따위의 어불성설로 호도하는 세력의 개소리(bullshit)에 치를 떠는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 나의 신념의 거미줄과 그 거미줄이 붙어서 구조를 지탱하는 기본 가치의 기둥의 중요성에 대한 통찰이 말의 성찬으로 자기 위안에 그치지 않는 힘을 책에 더해준다.
3장에서 유전 질환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면서 저자는 “필연적 진리”의 예를 적실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경쟁과 협업을 통해서 어떤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설의 검증을 통해 원인을 확정하고, 치료법들을 제안하고 이중맹검이라는 아주 불편한 방식으로 객관적으로 효과와 부작용을 고려해서 마침내 100년 전만 해도 원인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유전병을, 증상 완화를 넘어서서 원인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절대다수는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기본 지식이 없기에 어쩌면 이 과정에서 탄생한 “필연적 진리”를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그 과정과 참여하는 전문가들을 신뢰함으로 필연적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악의적이고 변태적으로 활용해서 필연적 진리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해 온 음모론자들로 인해 진리에 이르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자 방식인 과학을 부인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백신 음모론자가 보건부의 수장인 2025년 미국의 현실이 아마도 이 현상을 잘 보여주는 초상일 것이다. 첨언하자면, 저자가 경계하는 과학만능주의(scientism)는 그 자체로도 합리적인 진리와 지혜 추구에 해가 될 수 있겠으며, 동시에 의도적이든 아니든 과학과 과학만능주의를 구분하지 않는 음모론자들에게 과학이라는 진리 탐구의 유용한 도구를 약화시키는 방편이 되고 있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콜린스가 이 책의 주요 독자를 누구로 상정하는가는 4장에서 잘 드러난다. 그것은 현재 소위 복음주의자(evangelicals)라는 원래 의미가 완전히 오염된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신봉하는 주류 그리스도인들이 지혜를 폐기하는 음모론과 회의론의 주요한 독자이자 전파자라는 미국의 현실에 기반한다. 과신대의 역할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사뭇 익숙하고 또 깊이 공감할 만한 창조과학의 만행을 간략하지만 적절히 소개한다. 물론 그 정반대의 진영에 서 있는 것 같은 Richard Dawkins를 위시한 New Atheists(신무신론자)와 같은 이들이 다른 내용으로, 그러나 같은 목적과 결과를 가져와 신앙이 사랑과 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 본성상 지혜를 낳을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헤치고 있는 현실을 적절히 보여준다. 우리 손을 떠나고 있는 듯 보이는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의 상황에서 잃어버린 것, 또한 잃어버리고 있는 것, 그리고 아마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를 것들로 인한 불안과 그것을 향한 갈망의 현실에서 저자는 희망을 보려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저자의 진단과 설명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과연 이 이야기가 신적 존재를 확신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적실하게 다가갈 지에 대해서 확신하기 어렵다.
5장에서 다루는 신뢰의 문제는 여러 번 언급했듯이 지혜를 폐기하는 현실의 직접적인 이유일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신뢰의 회복이 가능하다면 문제 해결의 빠르고 바른 길이 될 것이다.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기를 마치 이성의 최고 발현인 것처럼 틀 짜기를 한 우파 포스트모더니즘은 신뢰의 근거를 전복시켜서 신뢰할 만한 대상은 신뢰하지 않고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을 신뢰하는 기현상을 낳았는데, 저자가 제시한 네 가지 중요한 기준 중에서 공유된 가치관이 과도하게 작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대상의 신뢰의 정도를 판단할 때 정직성, 역량, 겸손 등의 합리적인 기준보다 단순히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판단의 중요한 척도가 되는 현실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책임이 막중한 정치권이나 언론 등이 자신들의 이익을 과도하게 중시하는 방식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혜로 나아가는 길이 있기는 한 것이며 그 길이 현실적인가가 결국 이 책의 목적이자 결론이 될 것이다. 자신의 이익 추구가 최고의 선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결국 미래의 희망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사뭇 허탈할 수 있는 결론이지만, 저자가 이 결론에 다다른 과정을 돌아본다면 그리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결론이기도 하다. 사회적 책임을 방기 하는 기관들의 동력은 결국 다수를 이루는 개인을, 즉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경험의 반영이기 때문에 희망은 오롯이 개인에게 있다는 것은 필연적인 결론일 것이다. ‘지친 다수, exhausted majority’라고 표현되는 우리에게 전하는 저자의 경험이 반영된 따뜻한 권고와 제안은 그래서 희망을 걸어봄 직 하다는 것이 이 독후감의 결론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견인한 것은 결국 다수 개인의 집단적인 의지였음이 자명하기에 ‘지혜로 향하는 길’ 서약서에 서명하고 (https://braverangels.org/road-to-wisdom-pledge/), Ruth Fox 수녀의 축복기도를 (https://tinyurl.com/2v496heu) 서로에게 전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지혜로 나아가기로 다짐하고 기꺼이 동참하기로 결단하며, 독자 제위께도 그 기회를 잡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COVID-19 시기에 비대면으로 합주하는 영상이 꽤 유행했었습니다. N.T. Wright과 비대면으로 듀엣으로 부른 Beatles의 Yesterday를 개사한 Genesis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아래 링크게 가셔서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달의 독후감
지혜가 필요한 시간
프랜시스 S. 콜린스 저 · 이은진 역 ㅣ 포이에마 ㅣ 2025
* 선정된 독후감은 제목 가나다 순으로 게시하였습니다. ☺️
경계선을 넘어(Transcending boundaries)
『지혜가 필요한 시간』을 읽고
글ㅣ이정희
서울숲교회(유치부) 목사
과학과 신앙 사이에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과학기술문명이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 시대에 프랜시스 콜린스가 말하는 ‘지혜’는 경계선을 허물고 초월할 수 있어 보인다. 콜린스는 서문에서부터 ‘지혜’가 유일한 삶의 지침이었음을 고백한다. 콜린스에게 ‘지혜’가 없었다면 유전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과학자로서의 명성과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과학의 한계와 종교의 반대증명을 밝히기 위해 성서를 연구하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삶에는 ‘과학’과 ‘신앙’이라는 두 가지 영역이 공존하게 되었다.
“과학과 신앙의 역사적 관계는 생각만큼 험난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콜린스는 진리를 추구했고, 과학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을 질병에서 구해냈다. 그의 삶 자체가 과학과 신앙의 끊임없는 만남이었다. 그는 신앙을 가지면서도 과학적인 방법인 회의적인 방법으로 계속 질문했다고 밝힌다. 신앙은 아무 저항 없이 무조건으로 가지는 관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하는 이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콜린스가 참여했던 게놈프로젝트에서 밝혀낸 진실은 모든 인종이 한 조상이라는 것이다. 콜린스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과학과 신앙 사이에 큰 갈등을 일으킨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과학이 밝혀낸 인류기원의 비밀은 성서에 기록된 것을 증명하였다.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1950-). @NIV.org
역사적으로 과학과 신앙은 갈등 관계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지만, 콜린스는 자신이 경험한 게놈프로젝트를 통해서 인간기원에 대한 종교적 궁금증도 해소하게 되었으므로 갈등 관계가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상생하는 관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콜린스의 바람은 모든 인간이 하나의 공통된 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수 천 년 동안 우리를 괴롭혀온 갈등과 편견을 줄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창조과학과 같은 잘못된 방식으로 과학을 이용하여 성서를 증명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낸다. 콜린스는 과학이 암, 팬데믹,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과학이 때로는 인류가 원하는 다른 결론이나, 신이 원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과학은 스스로 교정하는 특성을 통해 객관적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며, 이는 우리의 공동 미래를 위한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는 능력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의사, 과학자, 그리고 질병을 통제하는 국립보건원장을 역임한 그의 이력과 경험을 미루어볼 때, 설득력을 가진다.
이 책은 과학과 신앙을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하지 않는다. 콜린스의 삶 자체가 두 가지 영역이 공존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콜린스는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신뢰’를 제시한다. ‘신뢰’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때문에 혼란한 이 시대에 무엇을 믿을 것인가? 확실한 결과 값을 도출하는 AI의 해답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초월’로 바꾸는 신앙을 믿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콜린스는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무엇이 진리이고 신뢰할 만한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공통된 기준과 과정을 발전시켜 왔고, 진리는 과학적 발견에서 나오기도 하고, 신앙과 도덕적 가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과학과 신앙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경계를 허물고 경계 너머의 ‘초월적인 존재’인 ‘지혜’를 제시한다. 잘못된 정보와 허위 정보, 두려움과 분노가 우리 사회를 분열되게 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지혜’만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콜린스가 제시하는 치유의 메시지는 ‘희망’이다. 신앙과 과학 어느 부분에도 치우치지 않고 두 영역 경계선을 넘어서는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무신론적 과학의 관점으로 접근해도 결국 필요한 것은 진리이며, 진리의 상위 영역이 바로 ‘지혜’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관점을 가지고 ‘초월’의 영역에서 접근해도 필요한 것이 진리이다. 두 영역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비슷하다. 이제 두 영역의 경계선을 허물고 경계선 너머에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는 ‘지혜’는 ‘초월자’이다. 초월자가 인간에게 주는 ‘지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종교와 과학의 양립을 바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선’ 너머에 있는 ‘초월’이 보일 것이다.
지혜를 잃어버린 시대, 다시 길을 묻다
『지혜가 필요한 시간』을 읽고
글ㅣ강상훈
이스턴일리노이대학 생물학과 교수
과신대 정회원, 자문위원
샤르댕북클럽 멤버
생물학을 전공하여 업으로 삼고 있는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Francis Collins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포스트닥을 하던 시절 출판되었던 The Language of God(신의 언어)을 읽고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던 경험이 있고, 그 이후에도 전공 분야가 겹치지 않음에도 계속 접하게 되는 행보들, 특히 BioLogos 재단 설립과 NIH 원장이 되어 COVID-19 pandemic 초기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저 한 발 앞만 겨우 보면서 나아가는 상황을 앞서서 헤쳐가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영감이 되는 분이다. 이 책은 지난 수십 년간 특히 미국에서 지속되어 온, 그러나 바로 그 COVID-19 pandemic 시기에 본격적으로 파괴적인 힘을 발휘했던 음모론과 가짜뉴스로 인류 문명이 축적해 온 지혜를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시대적 절망에 용감히 저항하는 노력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비록 선도적인 개인이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이긴 하지만, 지혜로운 인간(Homo sapiens)이라는 공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종의 실존적인 위기상황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기후 위기 문제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로서, 미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climate deniers(기후위기 부정론자)와 anti-vaxxers(백신 음모론자)들을 상대하면서 겪는 절망감이 누적되어 이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게 되었기에 더욱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쳐 들었다.
@Unsplash, DJ Paine
이 책의 원제가 의미하듯이 저자는 지혜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지혜로 향하는 길을 저자가 지혜의 원천으로 밝힌 진리, 과학, 신앙, 신뢰를 논의하면서 제시하고, 특별히 마지막 장에서 실천적인 제안을 한다. 이미 창조주의자들의 해악을 해소하기 위해서 BioLogos 재단을 설립한 전력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름다운 말로 가득한 책을 하나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 과학자의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일관성 있는 산물이다. 진리에 관한 2장에서 저자는 다양한 수준의 진리와 콰인(Quine)이라는 철학자가 제시한 신념의 거미줄이라는 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악의적으로 남용하여 의견과 진리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려는 극우적 음모론자들의 시도를 진단한다. 증거와 논리에 기반한 사고에 익숙한 과학자로서 alternative facts(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로 가상의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따위의 어불성설로 호도하는 세력의 개소리(bullshit)에 치를 떠는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 나의 신념의 거미줄과 그 거미줄이 붙어서 구조를 지탱하는 기본 가치의 기둥의 중요성에 대한 통찰이 말의 성찬으로 자기 위안에 그치지 않는 힘을 책에 더해준다.
3장에서 유전 질환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면서 저자는 “필연적 진리”의 예를 적실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경쟁과 협업을 통해서 어떤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설의 검증을 통해 원인을 확정하고, 치료법들을 제안하고 이중맹검이라는 아주 불편한 방식으로 객관적으로 효과와 부작용을 고려해서 마침내 100년 전만 해도 원인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유전병을, 증상 완화를 넘어서서 원인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절대다수는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기본 지식이 없기에 어쩌면 이 과정에서 탄생한 “필연적 진리”를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그 과정과 참여하는 전문가들을 신뢰함으로 필연적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악의적이고 변태적으로 활용해서 필연적 진리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해 온 음모론자들로 인해 진리에 이르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자 방식인 과학을 부인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백신 음모론자가 보건부의 수장인 2025년 미국의 현실이 아마도 이 현상을 잘 보여주는 초상일 것이다. 첨언하자면, 저자가 경계하는 과학만능주의(scientism)는 그 자체로도 합리적인 진리와 지혜 추구에 해가 될 수 있겠으며, 동시에 의도적이든 아니든 과학과 과학만능주의를 구분하지 않는 음모론자들에게 과학이라는 진리 탐구의 유용한 도구를 약화시키는 방편이 되고 있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콜린스가 이 책의 주요 독자를 누구로 상정하는가는 4장에서 잘 드러난다. 그것은 현재 소위 복음주의자(evangelicals)라는 원래 의미가 완전히 오염된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신봉하는 주류 그리스도인들이 지혜를 폐기하는 음모론과 회의론의 주요한 독자이자 전파자라는 미국의 현실에 기반한다. 과신대의 역할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사뭇 익숙하고 또 깊이 공감할 만한 창조과학의 만행을 간략하지만 적절히 소개한다. 물론 그 정반대의 진영에 서 있는 것 같은 Richard Dawkins를 위시한 New Atheists(신무신론자)와 같은 이들이 다른 내용으로, 그러나 같은 목적과 결과를 가져와 신앙이 사랑과 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 본성상 지혜를 낳을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헤치고 있는 현실을 적절히 보여준다. 우리 손을 떠나고 있는 듯 보이는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의 상황에서 잃어버린 것, 또한 잃어버리고 있는 것, 그리고 아마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를 것들로 인한 불안과 그것을 향한 갈망의 현실에서 저자는 희망을 보려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저자의 진단과 설명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과연 이 이야기가 신적 존재를 확신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적실하게 다가갈 지에 대해서 확신하기 어렵다.
5장에서 다루는 신뢰의 문제는 여러 번 언급했듯이 지혜를 폐기하는 현실의 직접적인 이유일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신뢰의 회복이 가능하다면 문제 해결의 빠르고 바른 길이 될 것이다.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기를 마치 이성의 최고 발현인 것처럼 틀 짜기를 한 우파 포스트모더니즘은 신뢰의 근거를 전복시켜서 신뢰할 만한 대상은 신뢰하지 않고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을 신뢰하는 기현상을 낳았는데, 저자가 제시한 네 가지 중요한 기준 중에서 공유된 가치관이 과도하게 작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대상의 신뢰의 정도를 판단할 때 정직성, 역량, 겸손 등의 합리적인 기준보다 단순히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판단의 중요한 척도가 되는 현실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책임이 막중한 정치권이나 언론 등이 자신들의 이익을 과도하게 중시하는 방식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혜로 나아가는 길이 있기는 한 것이며 그 길이 현실적인가가 결국 이 책의 목적이자 결론이 될 것이다. 자신의 이익 추구가 최고의 선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결국 미래의 희망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사뭇 허탈할 수 있는 결론이지만, 저자가 이 결론에 다다른 과정을 돌아본다면 그리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결론이기도 하다. 사회적 책임을 방기 하는 기관들의 동력은 결국 다수를 이루는 개인을, 즉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경험의 반영이기 때문에 희망은 오롯이 개인에게 있다는 것은 필연적인 결론일 것이다. ‘지친 다수, exhausted majority’라고 표현되는 우리에게 전하는 저자의 경험이 반영된 따뜻한 권고와 제안은 그래서 희망을 걸어봄 직 하다는 것이 이 독후감의 결론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견인한 것은 결국 다수 개인의 집단적인 의지였음이 자명하기에 ‘지혜로 향하는 길’ 서약서에 서명하고 (https://braverangels.org/road-to-wisdom-pledge/), Ruth Fox 수녀의 축복기도를 (https://tinyurl.com/2v496heu) 서로에게 전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지혜로 나아가기로 다짐하고 기꺼이 동참하기로 결단하며, 독자 제위께도 그 기회를 잡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COVID-19 시기에 비대면으로 합주하는 영상이 꽤 유행했었습니다. N.T. Wright과 비대면으로 듀엣으로 부른 Beatles의 Yesterday를 개사한 Genesis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아래 링크게 가셔서 들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