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책] "영적 여정의 결정판" 마커스 보그의 고백 - 마커스 J. 보그 (이신형)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5-09-14
조회수 198

영적 여정의 결정판
- <마커스 보그의 고백>, 마커스 J. 보그 지음
민경찬 손승우 옮김, 비아


글ㅣ이신형
기독교 북튜버 ‘믿음향기’
과신대 정회원



들어가는 글

2015년 세상을 떠난 신약성서학자 마커스 보그가 70세 생일을 맞아 남긴 <마커스 보그의 고백>은 한 생의 신앙 여정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신학적 유언입니다. 2025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진보 신학자'라는 외형 속에 숨어있는 깊고 전통적인 신앙의 뿌리들이었습니다. 과연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틀로 신앙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보그의 고백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의외의 답을 제시합니다.


몸글

보그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성경 자체를 버린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성경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더 치열하게 붙잡으려 했습니다. 아모스서를 통해 사회 정의의 부름을 듣게 된 순간부터 그의 신앙은 단순한 개인 구원의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그 핵심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예수를 성경 해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는 급진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초기 교회가 이미 지녔던 정통한 접근입니다. 그의 진보적 주장은 사실상 기독교 전통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통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의 본래 정신을 되살리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본질에 대한 갈망이 그를 이끌었습니다.


@Unsplash, Jametlene Reskp


그가 글을 통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신앙의 순수성을 향한 예언자적 열정입니다. 종교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되고, 신앙이 탐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될 때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바탕에는 늘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범재신론이라는 신학적 틀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했지만, 그 속에는 오히려 더 깊은 경외감이 살아 있었습니다. 신비 체험을 서술할 때의 그의 겸손한 어조는 오래된 경건주의자들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대한 그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교회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끝내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성공회 성당의 신학자로 봉사하며 교회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 비판은 교회를 포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애정의 표현이었습니다. 그의 개인적 경건 생활도 의외로 매우 전통적이었습니다. 기도와 묵상, 성경 읽기는 그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신학적 탐구의 중심에는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형태나 표현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구원, 성령의 임재에 대한 그의 확신은 오히려 어떤 보수적 신앙인보다도 더 깊고 단단해 보였습니다. 다만 그는 그 영원한 진리들을 오늘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새롭게 번역하려 했을 뿐입니다.


나가는 글

<마커스 보그의 고백>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신앙의 진정성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신학적 라벨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보여준 모습은 껍데기를 넘어 본질로 가고자 했던 한 신앙인의 진솔한 여정이었습니다.

책장을 덮고 나니, 제 안에서도 묘한 울림이 남았습니다. 신앙은 이렇게 단순한데, 우리는 왜 자꾸 복잡하게 만들고, 진영의 언어로 재단하려 하는 걸까. 보그는 그런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서, 결국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갈망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신학자의 회고록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조용하지만 강한 질문처럼 다가왔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나는, 우리는, 그 본질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