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 마리아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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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안정혜 | 비혼주의자 마리아 | IVP | 2019

 

 

작가 안정혜는 기독교 웹툰 사이트 ‘에끌툰’에서 ‘린든’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 본 작가의 작품은 “책을 요리하는 엄마”(국민일보 연재)였다. 가정주부이며 웹툰 작가이고, 책도 열심히 읽는, 참 특이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1살에 하나님을 만났고, 너무 기뻤고, 성경에 매료되었다. 그런 내게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성경이 가부장적 제도를 비호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면 어김없이 여성 성도들의 옷차림에 대한 가르침, 나중에 남편에게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가, 남편을 어떻게 내조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들을 많이 들었다. 결혼하기 전에도 그랬고,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기혼자매들의 수양회에 참석하면 주로 듣는 말씀들이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질문을 많이 하는 성격이다. ‘왜?’라는 질문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해서, 내 주변에는 나를 무척 성가셔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성경에는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은 진리였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딤후 3:16)

 

이 말씀이 내 발목을 잡았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문자적으로’ 봤다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그냥 성경을 ‘한국말로’ 본 것이니까. 나는 원래 독신의 은사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본 광경은, 아무리 못난 형제라도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자매와 결혼할 수 있었으며, 결혼하지 않은 자매는 ‘하자품’ 취급을 받고 동정을 샀다. 겉으로는 ‘독신의 은사를 받은 훌륭한 자매’라고 추켜 세우면서도 뒤에서는 측은해하며, 그 자매의 결혼을 위해 다같이 기도하자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태신앙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닌 것도 아닌 나는, 새로운 세상에 던져진 나는, 앞선 믿음의 선배들의 말들이 모두 맞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한국말로 된 성경에 있는 모든 지식들은 진리라고 믿었다. 내가 배운 성경지식들에 거짓이 있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결혼이야말로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며,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것이고, 될 수 있으면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아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훌륭한 크리스천 여성의 역할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자꾸만 의구심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결혼 전에는 대등한 친구관계로서 자유롭게 성경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편안한 관계였는데, 결혼 이후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의 리더로서의 부담감과 책임감에 많이 힘들어했고, 나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성경 말씀에 따라야 한다는 성도들의 간섭-그들은 권고라고 했다-에, 더욱 노력하며 지냈다. 그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 남편은 교회에 잠시 쉰다고 얘기를 했고, 우리는 과.신.대를 찾았다. 처음에는 많은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며 우리는 그렇게도 원하던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을 짚어주고 있다. 우리의 아버지는 땅에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며,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은 교회에 있는 ‘영적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것을. 그러니까 하나님 아닌 존재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자립적인 신앙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처음부터 비혼주의자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만의 신앙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어서 결혼이 필요하면 하는 것일 뿐. 이 책의 스토리는 목사의 성범죄라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교회 안에서 그루밍 성범죄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성도들은 어째서 그러한 목사를 감싸고 있는지, 성범죄가 된 목사가 복역 후에 다시 어떻게 목사로 활동할 수 있는지가 자세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줄거리의 일부일 뿐이다. 독서토론모임에서 ‘바울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며, 그리스도인 자매들이 어떻게 가부장적 폭력에 방치된 채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창 3:16)’는 말씀이 노동의 고통, 죽음과 함께, 인간이 타락할 때 하나님이 저주로 내리신 항목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선하다’라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런 논리에 근거해 가부장제는 ‘죄의 결과’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을 ‘창조 질서’라고 장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든 저주가 끊어졌다고 믿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에 노예제도가 당연시 여겨졌던 시대에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섰던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었고, 여성들이 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에, 여성을 사람대접받는 데 앞장섰던 사람들도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대에 혁명의 반기를 든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 남성들은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살아온 남성들은 여성과 동등해진다는 개념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진다는 뜻은, 그동안 남성들이 누리던 ‘편리함’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에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실질적으로는 매우 개인적이며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해 개인적으로 탐구하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목사님 말씀만, 전도사님 말씀만 신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책도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나의 ‘영적 아버지’가 추천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의 하나님’은 사라지고 ‘공동체의 하나님’만이 남았다.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동체의 하나님’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당했다.

 

공동체 안에서 희생을 강요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공동체의 문제점을 모른다. 오히려 공동체를 통해 이익을 얻기 때문에 그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런 모습일까?

 

비록 제목은 [비혼주의자 마리아]라서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볼 수도 있으나, 넓은 시각에서 보면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기 자신의 신앙을 항상 돌아보며 ‘왜?’라는 질문을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_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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