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규의 『아론의 송아지』를 읽고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04-28
조회수 490


 

시내 산 정상으로 십계명을 받기 위해 올라간 모세가 사십일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자, 그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론을 강요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중략) 우주와 지구의 기원과 관련해 성경의 문자적 표현과는 다른 설명을 제공하는 현대 과학에 대해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창조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아론의 송아지의 현대적 변형일 것이다.

  

임택규 | 아론의 송아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 334쪽 | 16,000원

 

 

“먼저 숲을 보고, 다음에 나무를 보십시오.”

 

과.신.대 [기초과정 1]을 마친 사람이라면 아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문장인지 알 것이다. 기초과정 말미에 우종학 교수님은 책 두 권을 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과.신.대 권장도서 목록 제일 첫 번째 책인 『창조론 연대기』를 통해 먼저 숲을 보고, 그다음 책인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통해 나무를 보라는 얘기다.

 

처음 과.신.대를 접했을 때는 마구잡이식으로 이 글, 저 글, 이 책, 저 책을 읽어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과.신.대 추천도서를 순차적으로 읽어가며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창조론 연대기』를 통해서는 과학과 신학은 대립구도가 아니라는 것과, 창조론에 대한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읽으며 과학과 신학이 왜 대립구도가 아닌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책, 즉 성경과 자연은 신학과 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도구로 읽으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아론의 송아지』에서는 더 나아가 창조과학이 펼치고 있는 여러 주장들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그것이 왜 틀렸는지 알려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내가 근본주의, 문자주의를 신봉하고 있었던 때라서, 읽으면서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이 저자 왜 이래? 왜 이리 글투가 공격적이지? 싸우자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꾸역꾸역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입장이 바뀐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유쾌, 상쾌, 통쾌할 수가 없는 책이다.

 

저자인 임택규 님은 성균관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태양력 발전소와 관련한 대규모 송전 시절 프로젝트팀의 엔지니어로 일하고 계신다 (책날개 참고). 본인이 직접 겪은 일화들을 섞어가며 알기 쉽게 과학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창조과학을 제일 처음 접했을 때 유행했던 것이, ‘배 선(船)’자에 얽힌 이야기이다. 노아의 방주에 타고 있던 여덟 명의 사람들을 나타내는 거라고, 현직 한문선생님이 특강시간에 침까지 튀기시며 열렬히 강의를 하셨기 때문에 정말 찰떡같이 믿었다. 그리고 당연히 ‘한자에 담긴 창세기의 발견’이라는 책을 당장 구입했고,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글을 읽을 때쯤에 이 기가 막히게 멋진(?!)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에 보물처럼 갖고 있었다. 그러나『아론의 송아지』를 읽자마자, 너무 창피해서 그 책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책 내용을 빌리자면, 우선 한국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배 선(船)’ 자의 ‘입 구(口)’자 위에 있는 글자는 ‘여덟 팔(八)’이 아니라, ‘몇 기(几)’자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글자인데도 이것이 진리인 것처럼 책으로 출판되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린이용 창조한자 따라 쓰기 워크북이 있을 정도다.

 


 이 책에서는 이 사안들 외에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창조과학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다. 특히 1부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과학’, 2부는 ‘과학의 눈으로 바라본 신앙’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서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생각하게 해준다.

 

앞의 두 책 – 창조론 연대기,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 – 에서 갈증을 느낀 독자라면, 이 책 아론의 송아지를 통해서 쾌감을 맛볼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