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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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핍스 | 인간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 김영사 | 2016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내용은 적은데 정보만 너무 많은 것이다. 지식의 양은 많지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준과 체계는 결여되어 있다. 데이터는 넘치지만 깊은 의미는 빈약하다. ... 인간의 복잡한 게놈을 도표로 만들어서 그럴듯하게 설명하지만, 많은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마약중독이 되어 거리를 배회하는 이유는 설명하지는 못한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문화에서도 아이들이 버려지는 이유 또한 정보만으로는 알 수 없다. ... 인간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포기됐다. 그리고 진화 혁명가들은 세계가 분화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것을 다시 통합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52쪽)

 

제가 카터 핍스(Carter Phipps)의 『인간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영어 제목: Evolutionaries)』를 읽게 된 이유는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습니다. 작년에 학교 아이들과 케빈 켈리의 『통제불능』을 읽고 토론하며, 강한 인공지능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마음이 많이 답답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집안에 틀어박혀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를 읽으면서, 인공지능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고민하는 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했었고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읽게 된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와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이 두 권은 읽다가 중단했음)를 읽다가 무신론적 유물론이 이제 인간성을 폐기 처분하고 은하철도 999의 철이처럼 우리가 기계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구나 하는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꼈었습니다. 물론 일개 고등학교 교사의 위기의식이었지요. 과신대를 통해서 진화에 대해 이제 막 배우고 있고,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서 성경 해석까지 새롭게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본 것 같은데, 세상은 진화를 이용해 차가운 기계 쪽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과연 진화를 이렇게 편향적으로만 봐도 되는가 하는 강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아직 건재함을 느껴보려고 하다가, 그 책에서 루돌프 오토 소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루돌프 오토 관련된 포스팅을 읽다가 바로 이 책 『인간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떠오른 카터 핍스의 이미지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균형잡힌 제너럴리스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카터 핍스는 12 세에 칼 세이건의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 반한 후, 그를 영웅시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사회생활용 교회 생활을 하다가 십 대 후반에 “삶의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고 동양철학과 명상에 심취했었고, 오클라호마 대학을 졸업한 지 2주 후에는 미국을 떠나 동양으로 건너가 10년을 보냈습니다. 귀국 후 미국의 진화 사상가 앤드류 코헨이 시작한 『인라이튼 넥스트』라는 잡지의 편집장을 20여 년간 맡으면서, 과학자, 미래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성직자, 철학자, 신학자 등등을 인터뷰하였습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그가 인터뷰한 인물들은 존 스튜어트, 하워드 블룸, 엘리자벳 사흐투리스, 레이 커즈와일, 켄 윌버, 바버라 마르크스 후바드, 브라이언 스윔, 마리오 쿠오모, 존 호트 등입니다. 그 외에도 저자는 진화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학술대회에 두루 참여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그가 소개하는 학자들의 이론들도 엄청 많아서 독서력이 일천한 제가 다 소화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게 큰 감명을 주었던 학자들과 그들의 이론들만을 언급한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칼 세이건의 전처 린 마굴리스의 공생 기원설
하워드 블룸의 오픈 엔드적 창조적 지능 이론
제임스 가드너,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복잡성 이론
레이 커즈와일의 신과 진화 개념
진화적 신학자 존 호트의 진화신학
샤르댕의 누스피어 개념
칼 융의 집단 무의식
브라이언 스윔 – 우주의 음유시인, 캘리포니아 통합학 연구소의 우주학자. 우주의 광대함 앞에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는 “전체 관점 보텍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고문 기계) 같은 사람.
스튜어트 브랜든의 초인간주의자들에 대한 충고
제임스 마크 볼드윈의 인간 의식 발달 단계
장 게브서의 인간 의식 발전 단계
클레어 그레이브스의 나선형 동력론
켄 윌버의 4등분법(Kosmos 지도)
찰스 샌더스 퍼스 – 버트런드 러셀이 “미국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미국의 사도"라고 부름. 주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 "자연법칙은 변할 수 있는 습관이다."
켄 윌버와 루퍼트 셀드레이크의 '대우주의 습관’
졸탄 토레이의 깨달음
과학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 마이클 다우드
바버라 마르크스 후바드의 에피파니
토머스 베리와 브라이언 스윔의 우주 이야기
앤드류 코헨의 진화적 세계관
깨달음의 두 가지 길 – 라마나 마하르시와 오로빈도 고즈, 영혼의 화살 끝에서 일어나는 진화
필립 클레이턴의 불완전한 신
진 휴스턴과 샤르댕의 진한 우정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의 느낌은 물질뿐 아니라 정신, 문화, 마음, 종교, 영혼 등등 인간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진화의 의미를 심도 있게 취재하는 기자를 좇았다니며, 그 옆에서 위대한 학자들의 진화에 대한 설명을 함께 들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서 성경이 재해석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소망이 더 밝아진 것 같아 기쁩니다. 카터 핍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사람은 그가 어렸을 때 칼 세이건이고, 어른이 되었을 때 샤르댕입니다. 이 책을 다 읽자마자 저는 샤르댕의 책 5권을 주문하여 읽고 있습니다. 책으로 난 길은 이렇게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가 하는 묘한 감사도 솟아납니다. 물론 절대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선배들이 있고, 책을 통해 그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기만 합니다.

 

아래 인용문은 그의 균형감각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인용문들입니다.

 

진화적 아이디어가 19세기 과학계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현재의 진화에 근거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여러 가지 결론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 분야를 연구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론이 과학적 원리를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한다. 생명에 대한 철학이 과학적 정보를 수용하는 것과, 과학에 근거해서 아예 그것을 규정하는 것은 다르다. 진화적 세계관은 과학의 발견을 수용하지만 인간 행위 주체(human agency)와 자유의지를 충분히 존중한다....슬픈 것은 인생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침팬지 전문가 제인 구달은 침팬지의 세계에는 인간 세계에 만연한 호전적인 성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구달은 결국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물론 우리가 환원주의적 세계관에만 의존한다면, 즉 인간의 행동은 전적으로 유전적인 성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도 없고 또한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도 없다고 한다면,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사촌 격인 침팬지가 평화주의자가 아니라는 구달의 발견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론(침팬지가 호전적이라는 발표는 전쟁을 막으려는 인간의 노력을 해칠 것이다.)은 그 자체로도 과학적이지 않다.(77~79쪽)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라는 표현은 다윈의 생존과 적응의 원리를 사회 경제적 현실에 적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다윈의 이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때 이 표현을 쓰기도 한다 - 내가 돈이 많고 네가 가난한 것 자체가 적자생존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적인 태도와 정책은 후퇴하게 된다..... 스탠퍼드 대학의 생물학자 조안 러프가든(Joan Roughgarden)은 최신 저작인 "친절한 유전자: 다윈의 독설 비평"(The Genial Gene: Deconstructing Darwinian Selfishness)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진화 생물학이 생긴 이후로 다윈주의는 '경쟁'이나 '이기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설명이 정말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따르겠지만, 유명 인사인 옥스퍼드 대학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도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때 '이기적 유전자'라는 표현을 하면서 러프가든의 설명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도킨스는 당당히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생존의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로봇 기계와도 같은데, 우리가 유전자라고 부르는 이기적인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화됐다.’

이런 말들은 유전학자나 천재 과학자들로 하여금 생물적 진화에 대한 대중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해결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그저 마케팅일 뿐이다. (80~81쪽)

신에 대한 논쟁은 종종 이런 왜곡 때문에 일어난다. 신무신론자들은 과학, 이성, 합리성 등의 현대적 특징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혼란을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이들이 간과한 부분은 종교적 표현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전통적 사고방식 안에서도 신을 생각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이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역사에 밀착되어있는 영혼을 자유롭게 해 주고, 배타적인 믿음 체계 - 배타적, 전통적, 신비주의적, 초월적, 다른 세상에 속한 듯한, 의인화된, 독단적인,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노인 같은 신을 믿는 믿음 등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 로부터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진화와 영성이라는 두 단어는 신의 유전자 또는 믿음의 본능을 찾으려 하고, 종교적 충동의 진화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만나게 됐다. 그런데 이 시대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진화 혁명적 영성은 진화와 영성의 또 다른 합류 지점이 된다. 진화 혁명가들은 진화적 렌즈를 통해 이미 정립된 영성과 종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영성, 새로운 신학, 새로운 신비주의, 새로운 우주학 그리고 진화적 세계관의 표현으로서의 새로운 도덕 등을 직감하고 그것들을 구축해가고 있다. 단순히 진화적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생물학적, 문화적 기원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의 통찰과 관점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인다. 새로운 영성은 전통적인 종교적 유신론과 다르며 진보적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적인, 그러나 종교적이지 않은 다원주의와도 다르다. (291~292쪽)

물질이나 물질주의 안에서 길을 잃을 수 있는 것처럼, 영혼 안에서 또는 의식, 영혼, 브라만 등만이 진짜인 이상주의 안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다. 오로빈도는 두 번째 현상을 더 위험하고 강력한 망상으로 보았다. (301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른 구절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잠언 4:27)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인과 같다." (아인슈타인)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칼 바르트)

 

 

글_ 최성일 기자 (ultrach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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