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연대기> 서평 (김영웅)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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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연대기 (김민석, 새물결플러스)


김영웅 

(포스텍 분자 생물학 박사, 현 미국 City of Hope에서 백혈병 연구)



일주일 만에 배송이 되어 (여긴 미국이다), 기대감으로 책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너무나 맛있는 음료를 다 마셨는데도 계속해서 빨대를 빨고 있는 기분이랄까. 책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찐하게 남는다. 


성인이 되어 만화책을 사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제 점심 시간에 카페테리아 구석진 곳에 앉아 혼자 밥을 먹으면서 키득키득대며 읽었는데 (옆 사람이 힐끗힐끗 쳐다보는데, 뭐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것따위 신경 쓸 겨를이 내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미있게 책 한 권을 읽어본게 언제였던가 싶다. 김민석 작가의 실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책은 만화만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잘 살리고 있다. 말 풍선 안에 적힌 문장들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위에 언급한 두 책이 가진 텍스트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되겠지만, 이 책이 전달하는 임팩트는 그에 못지 않다. 만화는 글뿐 아니라 그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그리고 인물들이 활동하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우리들은 글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무언의 감정을, 마치 브레인을 통과하지 않는 것처럼, 빠르게 게다가 아주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실제 만화를 보며 우린 우리 자신을 그 만화 속 시공간에 배치시키지 않는가!). 그것은 오디오와 비디오의 차이로 설명할 수도 없고, 글과 그림의 차이로도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만화만이 할 수 있는 유닉한 파트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만화 작가의 입장에선 말 풍선 안에 담을 글을 최대한 요약할 줄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정확하고 좋은 문장을 선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름도 빛도 없이 묻힌 작가의 부단한 연구와 성실한 노력이 선행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난 김민석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론 무크따와 아론의 송아지를 먼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개념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대다수 잊어버리게 되었는데 (두 책이 설명을 못한 게 아니라, 나의 롱텀 메모리 능력이 바닥이라고 그런 거임), 창조론 연대기를 보며 아주 선명하게 개념이 다시 기억이 나고 정리가 되었다. 물론 무크따와 아론의 송아지에서도 책 중간중간에 도표와 그림을 삽입시켰지만, 창조론 연대기에서 보여준 만화 속 정리는 정말 내겐 통쾌하고도 명쾌했다. 역시 만화만이 가진 매력이 분명 존재하는 거다. (새물결플러스에서 지속적으로 만화를 매개로 하여 신학, 과학, 인문학 등을 지속해서 출판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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