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Q
진화를 사용한 간접적 창조는 열등한 방법 아닌가요?
글ㅣ우종학
서울대 교수
과신대 아카데미 대표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는데 왜 진화가 필요하나요? 하나님이 시간의 과정에 따라 자연법칙을 사용했다는 진화적 창조보다는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는 방식이 더 낫지 않나요?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매개로 사용하는 간접적 혹은 매개적 창조는 왠지 열등해 보입니다. 인간이 진화의 방법으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진화적 창조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부인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단번에 완성된 형태도 창조할 수 있는데, 긴 시간의 과정을 거쳐서 재료를 사용하고 자연법칙을 사용해서 창조하는 방식은 왠지 열등해 보이고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제한된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의 경우도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야 올바른 창조이며, 다른 생명체에서 진화하는 방식으로 인간이 창조되었다면 그렇게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 Unsplash, Daniel Olah
성경은 창조의 방법을 다루지 않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창조의 행위에 관해 여러 가지 히브리어 동사가 사용됩니다. 창조하다, 만들다, 빚어내다 등의 뜻을 가진 ‘바라’, ‘아사’, ‘야짜르’가 대표적입니다. ‘바라’의 경우는 하나님이 주어로 사용됩니다. 가령,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표현에 사용된 동사가 ‘바라’입니다. 바라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수행되는 행위를 나타내고 뭔가 예기치 않은 새로운 창조물을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고 해석합니다. 반면에 ‘아사’나 ‘야짜르’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이나 창조물도 주어로 사용된 용법이 있습니다.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내듯 물질 혹은 재료를 사용하여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행위에 사용됩니다.
그래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는 [바라의 창조]이고,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매개로 사용하여 새로운 창조물을 만드는 창조는 [아사의 창조]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가령, 창세기 1장 21절에 나오는 물고기, 바다 생물과 새의 창조, 그리고 27절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바라’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생물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했으며 진화를 통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반면에 창세기 1장 16절에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을 창조하실 때는 ‘아사’라는 동사가 사용되기 때문에 직접적 창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사용한 매개적 창조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동사의 용법 차이로 직접적 창조와 매개적 창조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령, 창세기 1장 27절에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문장에 ‘바라’가 사용되었지만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라는 문장에는 ‘아사’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2장 7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짓는 장면에 사용된 동사는 ‘야짜르’입니다. ‘야짜르’도 ‘아사’와 마찬가지로 직접적 창조가 아닌 매개적 창조를 의미합니다. 흙을 재료로 삼아 사람을 빚어내는 창조의 방식을 설명할 때 적합합니다. 마치 땅이 풀과 채소와 나무들을 만들어내는 (아사, 1장 11절) 것처럼 말입니다.
종합해 보면, 인간의 창조에 관해서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는 바라의 창조로 설명하지만, 창세기 1장 26절과 2장 7절은 매개를 사용하는 간접적 창조를 나타내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직접적으로 창조된 것인지 혹은 간접적으로 창조된 것인지를 창세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를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창조 기사에는 여러 히브리어 동사가 혼용되고 있고, 이 동사의 의미와 용법에 기대어 직접적으로 창조된 창조물과 간접적으로 창조된 창조물을 판단해 낼 수는 없다는 중요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이 인간을 직접적으로 창조하셨고 물질을 매개로 사용해서 진화의 방법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창조 기사 본문이 직접적 창조나 간접적 창조, 혹은 기적적 창조나 자연적 창조와 같은 창조의 방법을 밝혀준다고 해석하는 건 오류이며, 창세기를 근거로 우주, 지구, 생명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과학이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 역시 범주의 오류입니다.
직접적 창조 vs. 간접적 창조 (매개적 창조)
도대체 직접적 창조라는 개념은 무슨 뜻일까요? 직접적 창조는 매개적 창조 혹은 간접적 창조와 어떻게 구분이 될까요?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매개로 사용했는가 아니면 무에서 유로 혹은 비물질에서 물질로 창조했는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자연법칙을 사용하여 창조했는가 아니면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방식, 어떤 기적적인 방식으로 창조했는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창조가 시작되지 않은 태초 이전을 가정해 봅시다. (물론 시간도 창조되었다면 창조 이전이라는 어떤 시점을 논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존재하던 어느 시점(?)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로 하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순간이 바로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순간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매개로 사용할 물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에서 유로의 창조는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의 세계가 존재하기 시작하게 되는 직접적 창조로, 비물질에서 물질로의 창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가령, (다중우주를 가정하지 않는다면) 빅뱅의 순간이 바로 이런 직접적 창조의 순간이라고 한번 끼워 맞춰 볼 수도 있겠습니다.

@ Unsplash, Philipp Torres
그러나 하나님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우주 만물을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그런 형태로 완성된 모습으로 단번에 창조하신 것은 아닙니다. 태양과 지구, 별이 만들어지고 지표면에 오대양 육대주가 만들어지고 생명체들이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과정은 한 번에 뚝딱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심지어 성서도 한 주간이라는 비유적인 시간의 틀에 담아서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설명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창조의 과정 동안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직접적 창조 행위를 중간중간 계속 하셨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태양과 달과 별은 이미 창조된 물질을 매개로 사용하여 창조하셨지만 생명체와 인간은 그런 매개적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매개를 사용하지 않고 창조하셨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에 관한 이런 주장들은 신학적인 개념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과학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셨다는 뜻을 우리 인간이 파악할 수 없으며 설혹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했다고 해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에서 다루는 창조의 개념과 주장은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형이상학 범주의 신학적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범주에서 생각해 보면 우주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물질과 에너지는 같은 개념입니다)을 매개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집니다. 우주와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현대 과학은 어느 정도 잘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존재하는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빅뱅의 순간에 모두 다 존재해야 합니다. 다만 처음에는 에너지의 형태로 시작되었고 그 에너지가 형태를 바꾸어 물질이 되고 별과 은하가 되고 생명체가 됩니다. 과학은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다룰 능력이 없으며 다만 매개적 창조만을 다루는 셈입니다.
자연적 창조 vs. 기적적 창조
직접적 창조를 기적적 창조와 연관시켜서 이해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니 인간이 비물질에서 물질로 혹은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라는 새로운 생명체가 창조된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 창조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직접적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매개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밖에 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창조의 방법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가령, 긴 시간을 거쳐서 자연적인 방식으로는 만들어 질 수 없는, 그러니까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는 어떤 기적적인 방식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은 자연적 창조와 기적적 창조를 대비시킵니다. 자연적 창조는 땅이 풀을 내는 것과 같은 간접적 창조이지만, 기적적 창조는 하나님이 직접 인간을 창조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 창조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를 가지고 직접 창조와 간접 창조를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직접적 창조와 간접적 창조는 신학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나눈다면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지 않은 간접 창조는 열등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창조해서 그 방법이 과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그런 창조는 위대하며 전능하신 창조주의 능력을 드러내지만, 반면에 자연법칙을 통해서 지구가 자전하며 밤과 낮을 만들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사계절을 만들고, 땅이 풀과 채소와 나무를 만들어내는 그런 간접적인 창조는 별로 전능하지도 않고 위대하지도 않다고 봐야 하는가 그런 질문 말입니다.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천체가 운행하며 사계절을 만들고 땅이 식물을 만들어 내려면 이 온 우주가 질서 있게 운행되어야 합니다. 자연법칙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연을 섭리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신학자 마크 해리스가 말했듯이 끊임없이 무질서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창조세계를 하나님이 신실하게 붙들고 질서 있게 하셔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자연법칙을 통해서 창조되는 방식은 훨씬 더 위대한 하나님의 전능성과 신실함을 드러냅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적인 창조 방식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설명되는 그 질서 있는 창조세계를 운행하고 섭리하는 하나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더 위대하고 전능하게 드러납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직접적 창조와 간접적 창조라는 개념은 매우 피상적으로 보이며 매우 인간 중심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대과학이 발전하기 전에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했던 시대의 신학적 개념들이 여전히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이 물질의 세계를 창조하신 이후에 모든 것들은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섭리하고 운행하시기 때문에 모든 간접적 창조가 다 하나님의 직접적 창조입니다. 간접적 창조보다 직접적 창조가 낫다는 주장은 창조세계를 자연의 영역과 기적의 영역으로 이원화하고 기적의 영역에 스스로 갇혀서 여기가 더 위대하다고 외치는 주장 같습니다.
@ Unsplash, Matthew Smith
창조의 방법과 인간의 지위
창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어봅시다. 독자 여러분은 창조되었습니까? 그렇게 믿는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오늘 새로운 아기가 태어났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신 것인가요, 아니면 간접적으로 창조하신 것인가요?
엄마와 아빠로부터 온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어 단세포가 되고 그 세포가 세포분열을 계속하여 열 달 가량 지나면 아기가 태어납니다. 그러니 우리는 비물질에서 물질로 혹은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매개적 창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시험관 시술이 가능한 현대에 과학은 아기가 태어나는 세포분열과 발생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그런 면에서 아기의 탄생은 기적적 창조가 아닙니다. 즉 우리는 모두 간접적 창조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수 없는 존재입니까? 아닙니다. 창조의 방법은 창조물의 지위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직접적 창조, 간접적 창조는 구시대의 개념입니다.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이며 창조의 과정에 매개를 사용했는지 혹은 자연법칙을 사용했는지 여부에 따라 창조물의 지위나 위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렇다고 쳐도 최초의 인간인 아담만큼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셔야만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창조에 관한 혼란은 신학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에 주로 기인합니다. 직접적 창조와 간접적 창조도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창조 교리인 ‘무에서 유로 창조’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은 성서신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러나 창조를 신학적으로 이해하려면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직접적 창조를 무에서 유로의 창조와 연관해서 이해하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직접적 창조 혹은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아닙니다.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창조가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흑암의 무질서한 세계에 하나하나 질서를 부여하시며 창조하셨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고 땅과 바다를 나누고 세계의 영역들을 나누신 후에 각 영역에 가득 찰 생명체들을 각각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게 질서 있고 조화로운 창조세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그 창조세계에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고 하나님을 대리하여 창조세계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세기가 강조하는 것은 창조의 방법이 아니라 창조세계의 질서와 우리 인간의 지위입니다.
과신Q
진화를 사용한 간접적 창조는 열등한 방법 아닌가요?
글ㅣ우종학
서울대 교수
과신대 아카데미 대표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는데 왜 진화가 필요하나요? 하나님이 시간의 과정에 따라 자연법칙을 사용했다는 진화적 창조보다는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는 방식이 더 낫지 않나요?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매개로 사용하는 간접적 혹은 매개적 창조는 왠지 열등해 보입니다. 인간이 진화의 방법으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진화적 창조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부인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단번에 완성된 형태도 창조할 수 있는데, 긴 시간의 과정을 거쳐서 재료를 사용하고 자연법칙을 사용해서 창조하는 방식은 왠지 열등해 보이고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제한된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의 경우도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야 올바른 창조이며, 다른 생명체에서 진화하는 방식으로 인간이 창조되었다면 그렇게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 Unsplash, Daniel Olah
성경은 창조의 방법을 다루지 않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창조의 행위에 관해 여러 가지 히브리어 동사가 사용됩니다. 창조하다, 만들다, 빚어내다 등의 뜻을 가진 ‘바라’, ‘아사’, ‘야짜르’가 대표적입니다. ‘바라’의 경우는 하나님이 주어로 사용됩니다. 가령,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표현에 사용된 동사가 ‘바라’입니다. 바라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수행되는 행위를 나타내고 뭔가 예기치 않은 새로운 창조물을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고 해석합니다. 반면에 ‘아사’나 ‘야짜르’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이나 창조물도 주어로 사용된 용법이 있습니다.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내듯 물질 혹은 재료를 사용하여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행위에 사용됩니다.
그래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는 [바라의 창조]이고,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매개로 사용하여 새로운 창조물을 만드는 창조는 [아사의 창조]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가령, 창세기 1장 21절에 나오는 물고기, 바다 생물과 새의 창조, 그리고 27절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바라’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생물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했으며 진화를 통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반면에 창세기 1장 16절에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을 창조하실 때는 ‘아사’라는 동사가 사용되기 때문에 직접적 창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사용한 매개적 창조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동사의 용법 차이로 직접적 창조와 매개적 창조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령, 창세기 1장 27절에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문장에 ‘바라’가 사용되었지만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라는 문장에는 ‘아사’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2장 7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짓는 장면에 사용된 동사는 ‘야짜르’입니다. ‘야짜르’도 ‘아사’와 마찬가지로 직접적 창조가 아닌 매개적 창조를 의미합니다. 흙을 재료로 삼아 사람을 빚어내는 창조의 방식을 설명할 때 적합합니다. 마치 땅이 풀과 채소와 나무들을 만들어내는 (아사, 1장 11절) 것처럼 말입니다.
종합해 보면, 인간의 창조에 관해서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는 바라의 창조로 설명하지만, 창세기 1장 26절과 2장 7절은 매개를 사용하는 간접적 창조를 나타내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직접적으로 창조된 것인지 혹은 간접적으로 창조된 것인지를 창세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를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창조 기사에는 여러 히브리어 동사가 혼용되고 있고, 이 동사의 의미와 용법에 기대어 직접적으로 창조된 창조물과 간접적으로 창조된 창조물을 판단해 낼 수는 없다는 중요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이 인간을 직접적으로 창조하셨고 물질을 매개로 사용해서 진화의 방법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창조 기사 본문이 직접적 창조나 간접적 창조, 혹은 기적적 창조나 자연적 창조와 같은 창조의 방법을 밝혀준다고 해석하는 건 오류이며, 창세기를 근거로 우주, 지구, 생명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과학이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 역시 범주의 오류입니다.
직접적 창조 vs. 간접적 창조 (매개적 창조)
도대체 직접적 창조라는 개념은 무슨 뜻일까요? 직접적 창조는 매개적 창조 혹은 간접적 창조와 어떻게 구분이 될까요?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매개로 사용했는가 아니면 무에서 유로 혹은 비물질에서 물질로 창조했는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자연법칙을 사용하여 창조했는가 아니면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방식, 어떤 기적적인 방식으로 창조했는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창조가 시작되지 않은 태초 이전을 가정해 봅시다. (물론 시간도 창조되었다면 창조 이전이라는 어떤 시점을 논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존재하던 어느 시점(?)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로 하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순간이 바로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순간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매개로 사용할 물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에서 유로의 창조는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의 세계가 존재하기 시작하게 되는 직접적 창조로, 비물질에서 물질로의 창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가령, (다중우주를 가정하지 않는다면) 빅뱅의 순간이 바로 이런 직접적 창조의 순간이라고 한번 끼워 맞춰 볼 수도 있겠습니다.
@ Unsplash, Philipp Torres
그러나 하나님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우주 만물을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그런 형태로 완성된 모습으로 단번에 창조하신 것은 아닙니다. 태양과 지구, 별이 만들어지고 지표면에 오대양 육대주가 만들어지고 생명체들이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과정은 한 번에 뚝딱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심지어 성서도 한 주간이라는 비유적인 시간의 틀에 담아서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설명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창조의 과정 동안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직접적 창조 행위를 중간중간 계속 하셨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태양과 달과 별은 이미 창조된 물질을 매개로 사용하여 창조하셨지만 생명체와 인간은 그런 매개적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매개를 사용하지 않고 창조하셨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에 관한 이런 주장들은 신학적인 개념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과학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셨다는 뜻을 우리 인간이 파악할 수 없으며 설혹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했다고 해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에서 다루는 창조의 개념과 주장은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형이상학 범주의 신학적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범주에서 생각해 보면 우주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물질과 에너지는 같은 개념입니다)을 매개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집니다. 우주와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현대 과학은 어느 정도 잘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존재하는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빅뱅의 순간에 모두 다 존재해야 합니다. 다만 처음에는 에너지의 형태로 시작되었고 그 에너지가 형태를 바꾸어 물질이 되고 별과 은하가 되고 생명체가 됩니다. 과학은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다룰 능력이 없으며 다만 매개적 창조만을 다루는 셈입니다.
자연적 창조 vs. 기적적 창조
직접적 창조를 기적적 창조와 연관시켜서 이해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니 인간이 비물질에서 물질로 혹은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라는 새로운 생명체가 창조된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 창조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직접적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매개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밖에 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창조의 방법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가령, 긴 시간을 거쳐서 자연적인 방식으로는 만들어 질 수 없는, 그러니까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는 어떤 기적적인 방식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은 자연적 창조와 기적적 창조를 대비시킵니다. 자연적 창조는 땅이 풀을 내는 것과 같은 간접적 창조이지만, 기적적 창조는 하나님이 직접 인간을 창조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 창조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를 가지고 직접 창조와 간접 창조를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직접적 창조와 간접적 창조는 신학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나눈다면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지 않은 간접 창조는 열등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창조해서 그 방법이 과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그런 창조는 위대하며 전능하신 창조주의 능력을 드러내지만, 반면에 자연법칙을 통해서 지구가 자전하며 밤과 낮을 만들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사계절을 만들고, 땅이 풀과 채소와 나무를 만들어내는 그런 간접적인 창조는 별로 전능하지도 않고 위대하지도 않다고 봐야 하는가 그런 질문 말입니다.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천체가 운행하며 사계절을 만들고 땅이 식물을 만들어 내려면 이 온 우주가 질서 있게 운행되어야 합니다. 자연법칙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연을 섭리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신학자 마크 해리스가 말했듯이 끊임없이 무질서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창조세계를 하나님이 신실하게 붙들고 질서 있게 하셔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자연법칙을 통해서 창조되는 방식은 훨씬 더 위대한 하나님의 전능성과 신실함을 드러냅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적인 창조 방식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설명되는 그 질서 있는 창조세계를 운행하고 섭리하는 하나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더 위대하고 전능하게 드러납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직접적 창조와 간접적 창조라는 개념은 매우 피상적으로 보이며 매우 인간 중심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대과학이 발전하기 전에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했던 시대의 신학적 개념들이 여전히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이 물질의 세계를 창조하신 이후에 모든 것들은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섭리하고 운행하시기 때문에 모든 간접적 창조가 다 하나님의 직접적 창조입니다. 간접적 창조보다 직접적 창조가 낫다는 주장은 창조세계를 자연의 영역과 기적의 영역으로 이원화하고 기적의 영역에 스스로 갇혀서 여기가 더 위대하다고 외치는 주장 같습니다.
창조의 방법과 인간의 지위
창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어봅시다. 독자 여러분은 창조되었습니까? 그렇게 믿는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오늘 새로운 아기가 태어났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신 것인가요, 아니면 간접적으로 창조하신 것인가요?
엄마와 아빠로부터 온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어 단세포가 되고 그 세포가 세포분열을 계속하여 열 달 가량 지나면 아기가 태어납니다. 그러니 우리는 비물질에서 물질로 혹은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매개적 창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시험관 시술이 가능한 현대에 과학은 아기가 태어나는 세포분열과 발생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그런 면에서 아기의 탄생은 기적적 창조가 아닙니다. 즉 우리는 모두 간접적 창조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수 없는 존재입니까? 아닙니다. 창조의 방법은 창조물의 지위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직접적 창조, 간접적 창조는 구시대의 개념입니다.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이며 창조의 과정에 매개를 사용했는지 혹은 자연법칙을 사용했는지 여부에 따라 창조물의 지위나 위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렇다고 쳐도 최초의 인간인 아담만큼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셔야만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창조에 관한 혼란은 신학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에 주로 기인합니다. 직접적 창조와 간접적 창조도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창조 교리인 ‘무에서 유로 창조’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은 성서신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러나 창조를 신학적으로 이해하려면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직접적 창조를 무에서 유로의 창조와 연관해서 이해하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직접적 창조 혹은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아닙니다.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창조가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흑암의 무질서한 세계에 하나하나 질서를 부여하시며 창조하셨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고 땅과 바다를 나누고 세계의 영역들을 나누신 후에 각 영역에 가득 찰 생명체들을 각각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게 질서 있고 조화로운 창조세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그 창조세계에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고 하나님을 대리하여 창조세계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세기가 강조하는 것은 창조의 방법이 아니라 창조세계의 질서와 우리 인간의 지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