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Q
창조의 섭리 안에 담긴 진화
글 |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신대 아카데미 대표
기독교 신앙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동시에 창조주로 고백한다. 성서를 믿는 우리는 모두 창세기 1,2장을 읽으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이 만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과학적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누가, 왜 만물을 창조했는지 묻는 말은 신앙의 영역이지만, 지구의 연대나 생물의 진화는 과학의 영역이다. 신앙과 과학의 범주를 구분하지 못하는 과학주의자들은 과학이 무신론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반대편 극단에서 창조과학자들은 창세기 1장에 근거해서 빅뱅우주론, 지질학, 생물진화론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범주의 오류다.

사진: Unsplash의 Sincerely Media
종교개혁자 칼뱅은 창세기 주석을 통해 성경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지구는 편평하고 궁창에 해와 달과 별들이 있고 궁창 위에 하나님의 거소가 있는 매우 작은 지구중심의 창조 계를 상식으로 받아들였던 고대근동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창세기가 기록되었다. 그래서 창세기에는 우주 팽창이나 지구의 공전이나, 지구의 연대나, 다양성이 증가한 생물의 역사가 담겨있지 않다. 칼뱅은 천문학과 같은 학문을 배우려면 성경 이외에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라고 권면한다. 어디서 찾아야 할까? 과학이라는 도구로 일반은총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칼뱅의 적응론의 핵심이다.
현대과학은 어떤 철학적 목적으로 창조세계를 탐구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인과관계를 찾아내고 자연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현대과학은 우주의 형성과정을 탐구했고 지구의 나이를 알아냈으며 생물의 진화과정을 하나하나 밝혀왔다. 성서가 기록되던 고대의 근동인들은 당대의 상식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만물을 즉각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창조했다는 개념(creatio de novo)을 가졌지만,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긴 연대를 거쳐 자연법칙을 사용해서 하나하나 창조하신다는 동적인 개념(creatio continua)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고대 근동 세계관에 갇힌 사람들도 많다. 6일 창조를 과학적 설명으로 오해하여 젊은지구론을 주장하거나, 지구연대 문제는 문자주의를 넘어섰지만 생물진화만큼은 부정하는 오랜지구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성서는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한다. 창세기 1장의 하루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지구의 하루를 의미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만, 그 의미를 바탕으로 창세기 1장을 과학적 설명으로 받아들이면 문자주의에 빠진다. 성경에서 과학의 답을 찾지 말라는 칼뱅의 경고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과학자들은 시간적 과정을 거쳐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때 진화라고 표현한다. 우주의 진화, 지구의 진화, 생물의 진화는 신을 배제하거나 신의 창조의 목적이나 계획을 제거하는 개념이 아니라, ‘어떻게’에 대한 답변이다. 그 답변은 ‘누가’, ‘왜’라는 신학적 질문과는 아예 범주가 다르다.
그렇다면 과학이 다루는 진화를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나님의 창조 방법으로 볼 수 있다. 과학의 범주인 우주와 생명의 진화를, 신앙의 범주에서 하나님의 창조 섭리로 이해하는 관점이 바로 유신 진화(theistic evolution)의 입장이다. 말 그대로 진화가 신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창조방법으로 진화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생물진화 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과학을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일 때 같은 관점이 적용된다. 과학은 사계절이 왜 생기고 밤낮이 왜 바뀌는지, 태양과 행성들의 중력을 통해 설명한다. 과학이 제공하는 이런 답변은 고대 근동의 상식과 어긋나지만 우리는 중력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중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유신 중력’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늘의 움직임을 중력으로 밝혔으니,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이 성행하지도 않는다. 반면, 진화의 경우는 과학으로 진화가 입증되었으니 기독교는 퇴출되어야 한다는 무신론의 주장이 만만치 않다. 과학이 다루는 진화가 무신론과 동치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은 무신 진화(atheistic evolution) 대신에 유신 진화(theistic evolution)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즉, 유신 진화라는 표현은 진화-창조 논쟁의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 내부에서 논할 때는 ‘진화적 창조’라는 표현이 바람직하다.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의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하셨다고 보는 진화적 창조, 혹은 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는 직접적 창조 등 다양한 수식어를 창조에 붙일 수 있다. 과학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밝히는 도구라고 보는 나와 같은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자연세계에 부여하신 자연법칙, 인과관계, 우발성 등을 사용하고 섭리하신다고 믿는다. 이 관점이 ‘진화적 창조’이다.

사진: Unsplash의 Ben Vaughn
진화적 창조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원죄론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한 쌍의 인간에게 아담과 하와라는 이름을 주실 수는 없을까? 진화적 창조를 반대해야 한다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단세포부터 약 열 달을 거쳐 태어나는 발생 과학은 수용해도 괜찮을까? 발생 과학을 수용하면 부모의 DNA를 통해 원죄가 생물학적으로 유전된다고 믿는 것일까? 수정과 발생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면, 진화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셨다고 믿는 일은 왜 허락되지 않는가? 발생을 통한 인간의 창조가 원죄론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진화적 창조를 통한 아담의 창조는 어떻게 원죄론을 부정할 수 있을까? 진화적 창조는 안되고 발생과정을 통한 창조는 괜찮다고 주장하면 이중잣대로 여겨진다.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한 분일까, 아니면 신학적 이해가 부족한 우리가 무능한 것일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죄의 상태를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이 믿음에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원죄론이 과학적 설명에 기초해 있지 않다면, 창조의 과정을 밝히는 과학이 어떻게 원죄론을 훼손할 수 있을까?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원죄론 때문에 과학적 설명인 진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근원적 한계를가진다.
신학적 어려움 때문에 과학을 반대하는 일은 어리석다. 우리의 무지를 하나님의 무능으로 변명해서는 곤란하다. 고대 근동의 세계관에 하나님을 가둘 수는 없다. 하나님을 자연법칙과 진화를 사용할 수 없는 무능한 신으로 제한하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부르며 경배하던 출애굽 히브리인들의 오류를 답습하는 셈이다.
AI시대에 과학에 대한 접근성은 훨씬 높아지고 있다. 문자주의에 빠진 교회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면서 창조신앙을 거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고대근동인들이 파악한 수준으로 창조주를 제한하면, 어떻게 과학을 품고 과학을 넘어서는 창조신앙이 가능하겠는가? 진화-창조 논쟁뿐만이 아니다. 과학적 발견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신학은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제대로 이해해왔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창조에 대한 이해를 완성해가야한다.
과신Q
창조의 섭리 안에 담긴 진화
글 |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신대 아카데미 대표
기독교 신앙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동시에 창조주로 고백한다. 성서를 믿는 우리는 모두 창세기 1,2장을 읽으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이 만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과학적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누가, 왜 만물을 창조했는지 묻는 말은 신앙의 영역이지만, 지구의 연대나 생물의 진화는 과학의 영역이다. 신앙과 과학의 범주를 구분하지 못하는 과학주의자들은 과학이 무신론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반대편 극단에서 창조과학자들은 창세기 1장에 근거해서 빅뱅우주론, 지질학, 생물진화론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범주의 오류다.
사진: Unsplash의 Sincerely Media
종교개혁자 칼뱅은 창세기 주석을 통해 성경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지구는 편평하고 궁창에 해와 달과 별들이 있고 궁창 위에 하나님의 거소가 있는 매우 작은 지구중심의 창조 계를 상식으로 받아들였던 고대근동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창세기가 기록되었다. 그래서 창세기에는 우주 팽창이나 지구의 공전이나, 지구의 연대나, 다양성이 증가한 생물의 역사가 담겨있지 않다. 칼뱅은 천문학과 같은 학문을 배우려면 성경 이외에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라고 권면한다. 어디서 찾아야 할까? 과학이라는 도구로 일반은총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칼뱅의 적응론의 핵심이다.
현대과학은 어떤 철학적 목적으로 창조세계를 탐구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인과관계를 찾아내고 자연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현대과학은 우주의 형성과정을 탐구했고 지구의 나이를 알아냈으며 생물의 진화과정을 하나하나 밝혀왔다. 성서가 기록되던 고대의 근동인들은 당대의 상식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만물을 즉각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창조했다는 개념(creatio de novo)을 가졌지만,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긴 연대를 거쳐 자연법칙을 사용해서 하나하나 창조하신다는 동적인 개념(creatio continua)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고대 근동 세계관에 갇힌 사람들도 많다. 6일 창조를 과학적 설명으로 오해하여 젊은지구론을 주장하거나, 지구연대 문제는 문자주의를 넘어섰지만 생물진화만큼은 부정하는 오랜지구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성서는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한다. 창세기 1장의 하루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지구의 하루를 의미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만, 그 의미를 바탕으로 창세기 1장을 과학적 설명으로 받아들이면 문자주의에 빠진다. 성경에서 과학의 답을 찾지 말라는 칼뱅의 경고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과학자들은 시간적 과정을 거쳐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때 진화라고 표현한다. 우주의 진화, 지구의 진화, 생물의 진화는 신을 배제하거나 신의 창조의 목적이나 계획을 제거하는 개념이 아니라, ‘어떻게’에 대한 답변이다. 그 답변은 ‘누가’, ‘왜’라는 신학적 질문과는 아예 범주가 다르다.
그렇다면 과학이 다루는 진화를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나님의 창조 방법으로 볼 수 있다. 과학의 범주인 우주와 생명의 진화를, 신앙의 범주에서 하나님의 창조 섭리로 이해하는 관점이 바로 유신 진화(theistic evolution)의 입장이다. 말 그대로 진화가 신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창조방법으로 진화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생물진화 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과학을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일 때 같은 관점이 적용된다. 과학은 사계절이 왜 생기고 밤낮이 왜 바뀌는지, 태양과 행성들의 중력을 통해 설명한다. 과학이 제공하는 이런 답변은 고대 근동의 상식과 어긋나지만 우리는 중력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중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유신 중력’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늘의 움직임을 중력으로 밝혔으니,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이 성행하지도 않는다. 반면, 진화의 경우는 과학으로 진화가 입증되었으니 기독교는 퇴출되어야 한다는 무신론의 주장이 만만치 않다. 과학이 다루는 진화가 무신론과 동치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은 무신 진화(atheistic evolution) 대신에 유신 진화(theistic evolution)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즉, 유신 진화라는 표현은 진화-창조 논쟁의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 내부에서 논할 때는 ‘진화적 창조’라는 표현이 바람직하다.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의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하셨다고 보는 진화적 창조, 혹은 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는 직접적 창조 등 다양한 수식어를 창조에 붙일 수 있다. 과학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밝히는 도구라고 보는 나와 같은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자연세계에 부여하신 자연법칙, 인과관계, 우발성 등을 사용하고 섭리하신다고 믿는다. 이 관점이 ‘진화적 창조’이다.
사진: Unsplash의 Ben Vaughn
진화적 창조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원죄론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한 쌍의 인간에게 아담과 하와라는 이름을 주실 수는 없을까? 진화적 창조를 반대해야 한다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단세포부터 약 열 달을 거쳐 태어나는 발생 과학은 수용해도 괜찮을까? 발생 과학을 수용하면 부모의 DNA를 통해 원죄가 생물학적으로 유전된다고 믿는 것일까? 수정과 발생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면, 진화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셨다고 믿는 일은 왜 허락되지 않는가? 발생을 통한 인간의 창조가 원죄론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진화적 창조를 통한 아담의 창조는 어떻게 원죄론을 부정할 수 있을까? 진화적 창조는 안되고 발생과정을 통한 창조는 괜찮다고 주장하면 이중잣대로 여겨진다.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한 분일까, 아니면 신학적 이해가 부족한 우리가 무능한 것일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죄의 상태를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이 믿음에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원죄론이 과학적 설명에 기초해 있지 않다면, 창조의 과정을 밝히는 과학이 어떻게 원죄론을 훼손할 수 있을까?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원죄론 때문에 과학적 설명인 진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근원적 한계를가진다.
신학적 어려움 때문에 과학을 반대하는 일은 어리석다. 우리의 무지를 하나님의 무능으로 변명해서는 곤란하다. 고대 근동의 세계관에 하나님을 가둘 수는 없다. 하나님을 자연법칙과 진화를 사용할 수 없는 무능한 신으로 제한하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부르며 경배하던 출애굽 히브리인들의 오류를 답습하는 셈이다.
AI시대에 과학에 대한 접근성은 훨씬 높아지고 있다. 문자주의에 빠진 교회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면서 창조신앙을 거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고대근동인들이 파악한 수준으로 창조주를 제한하면, 어떻게 과학을 품고 과학을 넘어서는 창조신앙이 가능하겠는가? 진화-창조 논쟁뿐만이 아니다. 과학적 발견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신학은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제대로 이해해왔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창조에 대한 이해를 완성해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