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Q
창세기 1장 6일 창조에 대한 다양한 해석
글 |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신대 아카데미 대표
창세기 1장이 우주와 생명이 창조된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과학교과서가 아니라는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인정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의 설명처럼 창세기는 고대 근동의 히브리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 당대의 상식과 세계관에 담겨서 계시되었습니다. 창세기가 우리에게 직접 주어진 책이 아니라 고대 근동인들에게 주어진 책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칼빈은 천문학 같은 난해한 내용의 답을 성경에서 찾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창세기 1장을 과학교과서처럼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6일 창조를 과학적 의미로 읽으면 현대과학과 모순됩니다. 가령, 과학은 우주의 나이는 100억 년이 넘었고 지구의 나이는 약 50억 년 가량 되었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6일 창조를 신학자들이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살펴보면서 현대과학을 배운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다루어 봅니다.
알레고리 해석
초대 교부들은 지구의 나이를 대략 6천 년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오리겐 같은 교부들의 성경해석 특징은 알레고리적입니다. 그들은 창세기 1장에 사용된 단어들에 알레고리적 의미를 가해서 해석했습니다. 가령, ‘하루’라는 단어의 경우, 문자적 의미는 24시간으로 읽었지만, 그 하루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해서 천 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베드로후서에 나오는 "주께는 천 년이 하루 같다"는 구절을 창세기에 적용하면 ‘하루 = 천 년’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사진: Unsplash의 Documerica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고 7일째 쉬셨다는 창세기 1장은 창조 세계의 역사가 6개의 천 년 동안 진행되고 그 다음에 예수의 재림이 온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과 부활이 6일에 해당하는 여섯 번째 천 년의 중간쯤에 일어났기 때문에, 당시 교부들은 지구의 나이를 대략 5500년 정도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500년이 더 지나면 6번째 천 년이 끝나고 예수의 재림과 천년왕국이 도래한다고 보았습니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일곱 개의 천 년이 끝나 세계의 역사가 완전하게 이루어진다고 해석했습니다.
물론 초대교부 시대 이후 500년이 지났지만, 예수의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고 중세시대와 종교개혁 시대로 역사는 흘러가게 됩니다. 초대 교부들의 알레고리적 해석은 이미 종교개혁 시대부터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가 되었고 예수의 부활 이후 2천 년 가량 지난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문자적 해석 - 족보계산
창세기 1장의 6일을 6천 년으로 보았던 교부들의 알레고리 해석과 달리 문자적 해석의 전통은 주로 족보계산에 근거했습니다. 아담부터 예수까지 족보를 계산하면 대략 4천 년의 연대가 나옵니다. 6일 창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그 이후 족보와 왕조의 연대를 계산해서 지구는 예수 탄생 약 4천 년 전에 창조된 것으로 해석했던 입장입니다. 잘 알려진 영국성공회의 제임스 어셔 대주교의 해석이 바로 이 전통입니다. 그는 창조의 시점이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이라고 날짜까지 특정했습니다.
문자적 해석에 근거한 족보계산의 전통은 종교개혁자 루터나 칼빈도 지지했고 17세기에는 성서해석의 주류 견해로 자리 잡았으며 그 이후 19세기까지 성경주석에 실리며 널리 퍼졌습니다. 지금도 서점에 가서 해설성경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족보계산의 주석이 달린 성경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맥 그리드 프라이스는 과격한 문자주의의 경향을 보인 제7안식교의 영향을 받아 6일 창조와 족보계산에 근거하여 홍수지질학과 젊은지구론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홍수지질학은 1960년대 활발하게 시작된 창조과학 젊은지구론의 근간이 됩니다. 물론 종교개혁 시대 이후 알려진 족보의 불확실성과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반드시 부자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하며 창조과학은 지구의 연대를 대략 6000년에서 1만 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19세기 전반부에는 지질학이 발전하며 지구의 나이가 6천 년이 아니라 훨씬 오래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들여다보면 지구가 최소한 수백만 년 수천만 년 전에 만들어졌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른 책인 자연을 읽어보면 6일 창조와 족보계산 해석은 창세기를 잘못 읽는 방식임을 명백히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대의 주류 구약성서학자들은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언제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혹은 얼마의 기간 창조역사가 진행되었는지 등에 관해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장은 우주와 생물의 창조연대나 순서를 알려주려는 과학적 목적이 있지 않고 누가 창조주인지 알려주는 목적을 가진 신학적 텍스트입니다.

사진: Unsplash의 Aaron Burden
즉각적 창조와 씨앗 창조
초대 교부 중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 신학자도 있었습니다. 주로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알레고리적 해석을 주장한 반면,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전혀 다르게 창세기 1장을 해석했습니다. 그는 창조가 6일이라는 물리적 시간 동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첫째 날 이전에 이미 모든 것을 동시에 창조하셨지만, 창세기 1장은 6일이라는 시간의 틀을 통해서 하나하나 창조의 단계를 전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6개의 과정으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6일 창조는 창조 스토리 안에 담긴 과정이지, 실제 물리적 시간의 단계, 즉 과학적 의미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한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것을 단번에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전능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는데 왜 6일이나 걸리냐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이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가 진정한 의미에서 즉각적 창조입니다. 창세기 1장을 읽으면 피조물들이 뚝딱뚝딱 즉각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어떤 동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창조되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물론 땅이 식물을 내라고 하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 묘사도 들어있지만, 대부분은 즉각적 창조로 읽힙니다.
그러나 아우구수티누스는 우주 만물이 즉각적으로 창조되었고 그래서 젊은지구론을 지지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만물의 가능태를 즉각적으로 창조하셨고 그 가능태가 현실로 드러나는 과정을 6일로 표현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질료와 형상의 개념을 사용하여 질료를 창조하신 다음에 질료로부터 만물이 하나하나 형상을 갖게 되는 과정을 창세기 1장이 담고 있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질료는 가령, 물질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에너지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원자로 구성된 물질이 바위, 구름, 식물, 동물 등 다양한 형상으로 하나하나 창조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을 씨앗창조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과나무 씨앗은 앞으로 나무가 자라서 줄기와 잎이 나고 열매가 나올 가능성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과나무 씨앗을 단번에 창조하셨고 그 씨앗이 자라서 사과나무가 되는 과정이 창조의 6일이라는 단계들을 통해 우리에게 설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과학과 비교
앞에서 살펴본 세 가지 해석, 알레고리적 해석, 문자적 6일 창조, 씨앗 창조의 관점을 현대과학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신학과 과학은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과학의 발견에 따라 성서해석을 바꾸거나 성서해석을 바탕으로 과학의 결론을 부정하는 방식은 범주의 오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와 자연을 종합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범주가 다른 두 책의 결론을 비교하며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려보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합니다. 알레고리적 해석이나 문자적 6일 창조는 현대과학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씨앗창조론은 현대과학과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타누스의 관점을 현대우주론과 연결해서 해석해 볼까요. 가령, 현대우주론은 빅뱅을 잘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빅뱅은 어떤 무한과 비슷한 에너지 상태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에너지가 빛이 되고 물질이 되고 별과 행성이 되고 생명과 인간이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에 대입해 보자면, 하나님이 빅뱅을 창조하신 것은 우주 만물의 가능태 (가령, 사과나무 씨앗)을 만든 셈이고, 그 이후 다양한 가능성이 우주의 진화과정 속에서 하나하나 만물을 만들어 냅니다. 빅뱅을 통해 시공간이 창조되었으므로 그 이후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고 우주의 역사가 펼쳐지면서 광자(빛)가 물질과 분리되어 처음으로 우주에 빛이 나옵니다. 우주가 진화하며 별과 행성과 생명체를 탄생하는 긴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과정이 창세기 1장에 6일에 사용된 시간의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과학과 씨앗창조론을 그렇게 병행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진: Unsplash의 Dns Dgn
물론 고대 근동인들은 빅뱅이나 우주의 팽창에 관한 상식이 없었기 때문에 창세기 1장에 빅뱅이 나올 리 없고 우주배경복사를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대신 고대 근동의 상식에 따라 궁창과 궁창 위의 물을 나누고 궁창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두셨다는 표현 등이 나옵니다. 창세기 1장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과학과 병행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는 과정처럼 창조를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빅뱅의 시점이 즉각적 창조의 시점이고 그 이후 우주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별과 지구와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뒤따른다는 현대과학의 설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씨앗창조론과 잘 병행됩니다.
6일 창조가 우리에게 우상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창세기 1장은 누가 창조주인가를 계시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고대 근동인들이 이해했던 방식처럼 6일 동안 즉각적으로 모든 것을 뚝딱뚝딱 만들었다며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역사를 고대 근동의 상식에 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대신 아우구스티누스가 전해준 지혜로운 관점을 따라 창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시간적 과정을 거치며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그 창조의 역사를 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더욱 합리적이고 신앙고백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광대한 우주를 오랫동안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습니다.
과신Q
창세기 1장 6일 창조에 대한 다양한 해석
글 |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신대 아카데미 대표
창세기 1장이 우주와 생명이 창조된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과학교과서가 아니라는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인정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의 설명처럼 창세기는 고대 근동의 히브리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 당대의 상식과 세계관에 담겨서 계시되었습니다. 창세기가 우리에게 직접 주어진 책이 아니라 고대 근동인들에게 주어진 책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칼빈은 천문학 같은 난해한 내용의 답을 성경에서 찾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창세기 1장을 과학교과서처럼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6일 창조를 과학적 의미로 읽으면 현대과학과 모순됩니다. 가령, 과학은 우주의 나이는 100억 년이 넘었고 지구의 나이는 약 50억 년 가량 되었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6일 창조를 신학자들이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살펴보면서 현대과학을 배운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다루어 봅니다.
알레고리 해석
초대 교부들은 지구의 나이를 대략 6천 년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오리겐 같은 교부들의 성경해석 특징은 알레고리적입니다. 그들은 창세기 1장에 사용된 단어들에 알레고리적 의미를 가해서 해석했습니다. 가령, ‘하루’라는 단어의 경우, 문자적 의미는 24시간으로 읽었지만, 그 하루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해서 천 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베드로후서에 나오는 "주께는 천 년이 하루 같다"는 구절을 창세기에 적용하면 ‘하루 = 천 년’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사진: Unsplash의 Documerica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고 7일째 쉬셨다는 창세기 1장은 창조 세계의 역사가 6개의 천 년 동안 진행되고 그 다음에 예수의 재림이 온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과 부활이 6일에 해당하는 여섯 번째 천 년의 중간쯤에 일어났기 때문에, 당시 교부들은 지구의 나이를 대략 5500년 정도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500년이 더 지나면 6번째 천 년이 끝나고 예수의 재림과 천년왕국이 도래한다고 보았습니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일곱 개의 천 년이 끝나 세계의 역사가 완전하게 이루어진다고 해석했습니다.
물론 초대교부 시대 이후 500년이 지났지만, 예수의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고 중세시대와 종교개혁 시대로 역사는 흘러가게 됩니다. 초대 교부들의 알레고리적 해석은 이미 종교개혁 시대부터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가 되었고 예수의 부활 이후 2천 년 가량 지난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문자적 해석 - 족보계산
창세기 1장의 6일을 6천 년으로 보았던 교부들의 알레고리 해석과 달리 문자적 해석의 전통은 주로 족보계산에 근거했습니다. 아담부터 예수까지 족보를 계산하면 대략 4천 년의 연대가 나옵니다. 6일 창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그 이후 족보와 왕조의 연대를 계산해서 지구는 예수 탄생 약 4천 년 전에 창조된 것으로 해석했던 입장입니다. 잘 알려진 영국성공회의 제임스 어셔 대주교의 해석이 바로 이 전통입니다. 그는 창조의 시점이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이라고 날짜까지 특정했습니다.
문자적 해석에 근거한 족보계산의 전통은 종교개혁자 루터나 칼빈도 지지했고 17세기에는 성서해석의 주류 견해로 자리 잡았으며 그 이후 19세기까지 성경주석에 실리며 널리 퍼졌습니다. 지금도 서점에 가서 해설성경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족보계산의 주석이 달린 성경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맥 그리드 프라이스는 과격한 문자주의의 경향을 보인 제7안식교의 영향을 받아 6일 창조와 족보계산에 근거하여 홍수지질학과 젊은지구론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홍수지질학은 1960년대 활발하게 시작된 창조과학 젊은지구론의 근간이 됩니다. 물론 종교개혁 시대 이후 알려진 족보의 불확실성과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반드시 부자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하며 창조과학은 지구의 연대를 대략 6000년에서 1만 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19세기 전반부에는 지질학이 발전하며 지구의 나이가 6천 년이 아니라 훨씬 오래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들여다보면 지구가 최소한 수백만 년 수천만 년 전에 만들어졌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른 책인 자연을 읽어보면 6일 창조와 족보계산 해석은 창세기를 잘못 읽는 방식임을 명백히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대의 주류 구약성서학자들은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언제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혹은 얼마의 기간 창조역사가 진행되었는지 등에 관해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장은 우주와 생물의 창조연대나 순서를 알려주려는 과학적 목적이 있지 않고 누가 창조주인지 알려주는 목적을 가진 신학적 텍스트입니다.
사진: Unsplash의 Aaron Burden
즉각적 창조와 씨앗 창조
초대 교부 중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 신학자도 있었습니다. 주로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알레고리적 해석을 주장한 반면,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전혀 다르게 창세기 1장을 해석했습니다. 그는 창조가 6일이라는 물리적 시간 동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첫째 날 이전에 이미 모든 것을 동시에 창조하셨지만, 창세기 1장은 6일이라는 시간의 틀을 통해서 하나하나 창조의 단계를 전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6개의 과정으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6일 창조는 창조 스토리 안에 담긴 과정이지, 실제 물리적 시간의 단계, 즉 과학적 의미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한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것을 단번에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전능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는데 왜 6일이나 걸리냐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이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가 진정한 의미에서 즉각적 창조입니다. 창세기 1장을 읽으면 피조물들이 뚝딱뚝딱 즉각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어떤 동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창조되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물론 땅이 식물을 내라고 하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 묘사도 들어있지만, 대부분은 즉각적 창조로 읽힙니다.
그러나 아우구수티누스는 우주 만물이 즉각적으로 창조되었고 그래서 젊은지구론을 지지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만물의 가능태를 즉각적으로 창조하셨고 그 가능태가 현실로 드러나는 과정을 6일로 표현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질료와 형상의 개념을 사용하여 질료를 창조하신 다음에 질료로부터 만물이 하나하나 형상을 갖게 되는 과정을 창세기 1장이 담고 있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질료는 가령, 물질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에너지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원자로 구성된 물질이 바위, 구름, 식물, 동물 등 다양한 형상으로 하나하나 창조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을 씨앗창조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과나무 씨앗은 앞으로 나무가 자라서 줄기와 잎이 나고 열매가 나올 가능성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과나무 씨앗을 단번에 창조하셨고 그 씨앗이 자라서 사과나무가 되는 과정이 창조의 6일이라는 단계들을 통해 우리에게 설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과학과 비교
앞에서 살펴본 세 가지 해석, 알레고리적 해석, 문자적 6일 창조, 씨앗 창조의 관점을 현대과학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신학과 과학은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과학의 발견에 따라 성서해석을 바꾸거나 성서해석을 바탕으로 과학의 결론을 부정하는 방식은 범주의 오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와 자연을 종합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범주가 다른 두 책의 결론을 비교하며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려보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합니다. 알레고리적 해석이나 문자적 6일 창조는 현대과학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씨앗창조론은 현대과학과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타누스의 관점을 현대우주론과 연결해서 해석해 볼까요. 가령, 현대우주론은 빅뱅을 잘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빅뱅은 어떤 무한과 비슷한 에너지 상태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에너지가 빛이 되고 물질이 되고 별과 행성이 되고 생명과 인간이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에 대입해 보자면, 하나님이 빅뱅을 창조하신 것은 우주 만물의 가능태 (가령, 사과나무 씨앗)을 만든 셈이고, 그 이후 다양한 가능성이 우주의 진화과정 속에서 하나하나 만물을 만들어 냅니다. 빅뱅을 통해 시공간이 창조되었으므로 그 이후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고 우주의 역사가 펼쳐지면서 광자(빛)가 물질과 분리되어 처음으로 우주에 빛이 나옵니다. 우주가 진화하며 별과 행성과 생명체를 탄생하는 긴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과정이 창세기 1장에 6일에 사용된 시간의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과학과 씨앗창조론을 그렇게 병행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진: Unsplash의 Dns Dgn
물론 고대 근동인들은 빅뱅이나 우주의 팽창에 관한 상식이 없었기 때문에 창세기 1장에 빅뱅이 나올 리 없고 우주배경복사를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대신 고대 근동의 상식에 따라 궁창과 궁창 위의 물을 나누고 궁창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두셨다는 표현 등이 나옵니다. 창세기 1장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과학과 병행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는 과정처럼 창조를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빅뱅의 시점이 즉각적 창조의 시점이고 그 이후 우주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별과 지구와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뒤따른다는 현대과학의 설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씨앗창조론과 잘 병행됩니다.
6일 창조가 우리에게 우상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창세기 1장은 누가 창조주인가를 계시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고대 근동인들이 이해했던 방식처럼 6일 동안 즉각적으로 모든 것을 뚝딱뚝딱 만들었다며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역사를 고대 근동의 상식에 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대신 아우구스티누스가 전해준 지혜로운 관점을 따라 창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시간적 과정을 거치며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그 창조의 역사를 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더욱 합리적이고 신앙고백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광대한 우주를 오랫동안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