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다가서다] 1.적대감을 녹여내고 (우종학)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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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과학에 다가서다

1. 적대감을 녹여내고


글ㅣ우종학
서울대학교 교수, 과학과신학의대화 대표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과학과 밀접하다. 일상에서 밀접하게 접하는 과학기술 문명 뿐만 아니라 빅히스토리 (big history)로 불리는 우주와 생명의 역사도 현대인에게는 익숙한 담론이다. 40대 이상 장년들은 학교에서 자연의 역사와 관련된 과학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은 반면, 청년 세대와 지금의 십대들은 우주와 생명, 진화 등 현대 과학의 주요 내용을 교육과정을 통해 배우고 자연스럽게 과학에 노출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과학 관련 동영상들과 다양한 대중과학서들도 과학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우리 모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현대과학의 놀라운 성과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과학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과학적 사고에도 익숙하다. 여전히 점을 치거나 예언에 기대거나 유사과학을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한다. 데이터를 들여다 보고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 혹은 입증이 되는지 아닌지를 따져 묻고 판단한다. 합리적 사고와 데이터에 기반한 경험적 증거들을 결합해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과학 시대라고 부를 만큼 과학이 깊숙이 들어와 있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말끔히 해결되지 않고 찜찜하게 남아있는 질문들을 갖고 있다. 과학이 이렇게 발전한 시대에 신앙이란 무엇일까? 과학은 신앙과 대립되는 것일까? 과학은 신앙의 문제에 관해서도 권위를 가지고 최종적인 답을 줄 수 있을까?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우주론이나 진화론은 성경과 모순되는 것일까? 뇌과학과 유전자 가위 등 끝없이 발전하는 과학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단순하고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원론적인 답변은 사실 간단하다. 과학은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인 우주와 지구와 생명의 현상들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성서는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선언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지 설명하지 않는다. 성서는 누가 창조주인가를 다루지만 어떻게 창조했는지 과학적 내용은 별로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을 들여다 봐야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지식으로 창조된 우주와 지구와 생명을 탐구하고 이해해야 한다. 과학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물론 누가 창조주인지 관심이 없거나 묻지 않거나 믿지 않는 과학자들도 자연세계를 탐구한다. 그러나 창조주를 믿는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그 모든 과학활동은 창조세계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과학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탐구하는 작업이라면 우리는 과학에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과학이 창조세계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는데 그 과학을 피할 이유가 없다. 아니 오히려 과학을 통해 창조세계를 더 깊이 더 폭넓게 배우고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하고 하나님을 더 찬양해야 한다. 시편 19편의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망원경도 없었던 수천년 전, 아마도 고대근동 지역 어디선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맨눈으로 목격한 시편 기자는 해와 달과 별들의 세계를 묵상하며 그렇게 고백했을 것이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우주 끝을 관측하고 전자현미경으로 세포의 세계를 탐구하고 다양한 현대과학의 기술로 수천년 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새로운 세계들을 드러나는 현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떨까? 아마도 시편 기자보다 100배는 더 깊은 감동으로 과학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찬양해야 하지 않을까? 


원론적인 답변과 달리 현실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어려워 한다. 과학에 다가서기가 좀처럼 쉽지는 않다. 그 길을 막는 여러가지 장벽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을 통해 창조신앙이 더 확장되고 깊어지려면 그 길을 막는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한다.  세 가지를 꼽아 보자면, 첫째 과학에 대한 적대감, 둘째 과학에 대한 두려움, 셋째 과학에 대한 망상이다. 어떻게 하면 이 장애물들을 넘어 과학에 다가설 수 있을지, 그리고 과학을 누리고 창조세계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고 그래서 더 깊은 감동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지, 몇 번에 나누어 고찰해 보자. 


과학에 대한 적대감

목회자를 포함해서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 중에는 은근히 과학에 적대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교회 밖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과학에 대한 적대감을 교회 안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스도들을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수없이 연구하고 확립한 내용을 터무니 없다고 폄하하고 무시하거나, 현대과학의 핵심적인 이론들을 사탄의 계략이나 신앙을 무너뜨리는 적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과학에 다가서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잘못된 적대감을 녹여내야 한다. 



이러한 적대감의 이유 중의 하나는 과학과 기독교의 전쟁이라는 관점이 교계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예가 갈릴레이의 재판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이단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던 그 사건은 교회가 과학을 탄압한 대표적 사건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왔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지동설을 주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교회 내부에 지동설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과학계에도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사람들도 있었다. 즉, 갈릴레이 사건은 과학과 종교가 싸움을 한 결과가 아니라, 지동설의 과학적 증거가 부족했던 그 당시 상황에서 다양한 이슈가 섞여 있었던 사건이다.1


기독교가 출현하고 성서가 기록된 이후 긴 세월이 지나서야 드디어 근대과학이 시작되었다. 과학은 자연세계를 조금씩 제대로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보다 실재에 가까운 지식들을 얻어내기 시작했다. 과학이 새롭게 그려내는 자연세계에 대한 그림은 기존의 종교적 세계관과 대비되며 다양한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과학과 기독교는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고 서로 보완적이기도 했으며, 많은 영역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은 채 분리되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는 서로 적대적이라며 지나치게 갈등을 강조하는 견해가 등장했으며 과학과 종교 간의 전쟁이라는 프레임이 지금도 널리 퍼져 있다. 존 윌리엄 드레이퍼가 1874년에 저술한 『과학과 종교, 그 대립의 역사』와 앤드류 딕슨 화이트가 1896년에 저술한 『기독교계에서 과학과 신학의 전쟁사』가 대표적이다. 이 두 책은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전쟁의 역사로 기술했으며 기독교와 과학 사이의 적대감을 유행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관점은 과학사의 주류 관점으로 자리 잡아 20세기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새로운 연구들이 소개되면서 과학과 기독교를 적대적 관계로 보는 기존의 관점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2 갈릴레이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과학과 기독교 간의 전쟁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며 당대의 복잡한 상황을 무시하는 왜곡된 관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과학사가들은 드레이퍼나 화이트의 관점을 더이상 실제 일어난 역사를 정확히 대변하지 못하는 낡은 관점으로 평가한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와 과학을 적대적으로 보는 관점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과학을 폄하하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과학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이 종교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독교 신앙을 공격하고 있다. 


신앙과 불신앙의 싸움, 세계관의 전쟁은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과학은 그 자체가 신앙의 적이거나 기독교를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무신론자들에 의해 종교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될 뿐이다. 그들의 공격 때문에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오해를 넘어야 한다.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놀라운 비밀들을 드러내고 창조의 역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 과학을 사용하여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의 주장은 과학으로 입증된 사실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이 신앙의 적이라는 오해를 풀고 과학에 대한 적대감을 녹여내야 한다. 과학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더 깊이 깨닫고 묵상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학에 다가가야 한다. 그 첫 단계는 바로 과학에 대한 적대감을 녹여내는 일이다. 다음 글은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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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릴레이의 사건에 관해서는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2014, 기독학생출판부, 우종학)의 2장을 참조하라.

2. 가령, David C. Lindberg and Ronald L. Numbers, When Science and Christianity Meet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3)과 로널드 넘버스 엮음,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 (서울, 뜨인돌 2010)을 보라.  

3. 과학과 종교의 영역을 역사적 맥락에서 재 정의한 시도로는 Peter Harrison, Territories of Science and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5)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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