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Q] 거대한 용이 불을 뿜고 하늘로 (우종학)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5-09-15
조회수 658

과신Q
거대한 용이 불을 뿜고 하늘로
- 신인동형적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글ㅣ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아카데미 대표


095e53c94f836.jpg@Unsplash, Mark mc neill


모세와 아론이 타임머신을 타고 21세로 여행을 왔습니다. 현대문명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그들을 데리고 인천공항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5분에서 10분마다 거대한 비행기들이 굉음을 내며 수백 명의 사람을 태우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모세와 아론은 과연 뭐라고 할까요? 아마도, 거대한 용이 커다란 두날개를 펼치고 불을 뿜으며 하늘로 올라간다고 표현할지도 모릅니다.

수천 년 전 근동 지역에 살던 모세와 아론에게는 비행기라는 개념도 없고 비행기를 표현할 어휘도 없습니다. 엄청나게 무거운 물체가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과학지식도 없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지만 자신들이 보고 있는 그 장면을 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가진 상식과 경험의 한계 안에서 목격한 장면을 인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행기의 이륙 장면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인지의 한계 뿐만 아니라 어휘와 언어의 한계도 겪게 됩니다. 그들이 가진 고대 근동 문화의 어휘로 기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기록은 매우 부정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우주와 지구와 생명을 창조하신 전 과정을 계시해 주신다고 가정해 봅시다. 가령, 환상이나 비디오 영상을 보여준다고 해 봅시다. 100억 년도 넘는 시간 동안 창조의 역사가 펼쳐졌으니, 아무래도 빠른 배속으로 동영상을 돌려도 그 과정을 다 볼 수는 없습니다. 띄엄띄엄, 하이라이트만 겨우 감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이라이트 장면들만을 본다고 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인천공항에 구경 온 모세와 아론처럼 우리는 인지의 한계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직접 목격한 창조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다면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그 기록도 매우 제한적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인지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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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Milad Fakurian


성경이 바로 그렇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언어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에 초월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은 하지만 과연 초월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과정도 인간의 언어로 다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장구한 창조의 모든 과정을 다 목격할 수도  없지만, 설혹 목격한다고 해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성서의 저자들은 그 당대의 상식과 문화와 언어의 한계 안에서 성서를 기록했습니다. 자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미래의 언어를 주술적으로 담아내지는 않았습니다. 성서의 기록은 한 시대의 문자와 언어의 한계를 담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비행기의 이륙 장면을 보고 제대로 표현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창세기 1~2장은 하나님을 인간의 모습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의 모습처럼, 인간의 모습을 하나님께 입혀서 그렇게 묘사합니다. 이런 방식을 신인동형적(anthropomorphic) 표현이라고 부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인동형적 표현 이외에 다른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만일 성서가 천사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행히 성서는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선물로 계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가 사용된다면 하나님을 신인동형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신인동형적 표현은 문자적으로 정확한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가 떨어질까요? 과학적으로 정확한 설명이 아니라 비유적 설명이라면, 거짓이 되거나 믿지 못할 수준의 이야기로 전락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이 비행기를 보고 거대한 용이라고 기록했다고 해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일이 허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신인동형적 표현을 이해하면 성서의 내용은 더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을 인간의 모습 수준으로 끌어내려 신인동형적 표현 안에 가두어 두는 문자주의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가 인지하고 이해하는 수준 너머로 바르게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고대근동의 상식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대신에 우리 시대의 상식과 과학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우리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완벽히 묘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과학으로 다 설명하고 기록할 수 있다면 오히려 창조의 신비는 사라질 지도 모릅니다. 과학으로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서는 성서가 쓰인 고대 근동 시대의 언어와 문화의 한계 안에서 기록되어 있지만,  문자적 기록을 넘어 훨씬 풍성한 신비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성서의 신인동형적 개념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축복이지만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서를 바르게 읽고 창조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신인동형의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함께 대화할 질문

1. 신약성서에 나오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문자적으로 읽어야 할까요? 아니면 비유로 읽어야 할까요? 신약시대 사람들에게는 문자적인 의미였을까요? 상징이었을까요?

2. 신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하늘’이라는 표현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공간을 의미했습니다. 땅 위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존재하는 하늘(궁창)이 있고 그 하늘 위의 하늘에 하나님이 거주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그 당대의 상식이었습니다. 현대과학을 배운 우리는 대기권을 넘어 지구 밖으로 나가면 우주 공간이 펼쳐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신약시대 사람들이 표현한 ‘하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3. 신인동형적 표현의 의미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성경에 나오는 표현 중에 신인동형적 표현의 예를 찾아서 토의해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내용들 중에 신인동형적 한계가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4. 우리는 하나님을 신인동형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런 한계에는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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