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다가서기] 2.과학이 신을 대체한다는 두려움 (우종학)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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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M.T ElGassier 

과학에 다가서기

2.과학이 신을 대체한다는 두려움


글ㅣ우종학
서울대 교수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에 다가서야 한다. 과학의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과학을 외면한다면 신앙도 불구가 되기 쉽다. 지난 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에 다가서기 어려운 이유 중에서 과학에 대한 적대감을 다루었다. 이번에는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어 보자. 어쩌면 과학에 대한 적대감은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과학을 받아들이면 신앙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과학이 신의 자리를 빼앗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을 적대시하거나 혹은 일부러 외면하는 지도 모른다. 이 두려움의 밑바탕에는 과학이 신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깔려 있다.


 저명한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라는 책에서 우주의 기원과 역사를 설명하며 그렇게 주장했다. 과학으로 설명되는 우주에 신이 설자리는 없다고. 과학이 모든 현상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고 작동원리를 설명해 낼 수 있기 때문에 신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호킹은 우주가 생성되는 과정에 신이라고 부르는 어떤 원인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 충족적인 우주에서 신의 자리는 없다며 신을 우주 밖으로 몰아낸다. 


 호킹의 관점은 과학의 역사를 반영한다. 근대과학이 출현하기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자연현상을 신화적으로 이해했다. 가령, 누군가 번개에 맞아 죽으면 하늘이 벌을 내렸고, 산사태가 나면 산신령이 노했으며, 풍랑에 배가 파선되면 용왕님이 화났다는 방식으로 이해한 고대의 세계관이 그렇다. 천사와 같은 어떤 행위자(agent)를 차용해서 난해하고 두려운 자연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번개나 산사태나 풍랑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설명이 가능해졌고 그런 행위자들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이렇게 자연 현상의 탈-신화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거치며 근대과학의 시대가 도래했다.


 과학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자연계 안에서 원인을 찾는다. 천사나 산신령을 끌어다가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을 자연주의적 방법론이라고 한다. 과학은 천사나 산신령 같은 자연 외적인 행위자를 탐구하거나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자연계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연주의적 방법론은 자연스럽게 무신론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하지만 우주와 생명의 역사를 설명하는 과학에는 신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피에르시몽 드 라플라스 후작(Pierre-Simon, marquis de Laplace, 1749-1827) 
프랑스의 수학자 @wikipedia


 고대의 우주관은 태양과 달과 행성들을 신들이 끌고 운행한다고 여겼던 반면, 근대과학 시대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우주를 기계처럼 다루었다. 중력이라는 자연법칙으로 천체의 운행을 설명한 라플라스의 책을 헌정 받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물었다. 그렇다면 신의 역할은 무엇이냐고? 이 질문을 받은 라플라스는 신이라는 가설이 필요 없다고 답했다. 이 유명한 일화에서 라플라스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적 견해를 드러낸 것인지, 혹은 중력이론으로 천체의 운행을 설명하는 과학의 설명 체계에 신이라는 초자연적 원인을 굳이 집어넣을 필요가 없다는 자연주의적 방법론의 태도를 말한 것인지는 논란이 된다. 


 라플라스와 동시대 인물인 아이작 뉴턴도 마찬가지로 행성들의 운행을 중력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뉴턴을 반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달과 행성들을 직접 운행해야 하는데 뉴턴은 신이 필요 없는 기계적 우주관을 도입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턴은 창조주 하나님이 중력을 사용하여 행성들을 운행한다고 믿었다. 천사가 달을 끄는 것이 아니라 중력을 통해 질서 있게 천체들이 운행되도록 신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말이다.


 라플라스와 뉴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근대과학의 발전은 과학의 자연주의적 방법론과 신의 역할에 관해 이신론(deism) 논쟁을 일으켰다. 시계처럼 결정론으로 설명되는 우주에서 신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은 과학을 수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종착지일까? 그렇지 않다. 


 태양과 달과 행성들의 운동이 중력이론으로 잘 설명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행성들 간의 중력이 작용하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다.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과학의 작동원리 안에 신을 집어넣어서 신을 하나의 자연세계의 원인으로 가정하는 방식은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의 신적 위치를 강등하는 셈이다.


 반대로 이렇게 질서 있는 중력 법칙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라플라스는 신 가설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그 뜻은 과학의 설명 체계에 신을 직접적 원인으로 넣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반면, 중력과 같은 자연법칙과 과학의 설명 체계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지 묻는다면 그 이유는 바로 신이 자연세계에 중력 법칙을 부여하였고 중력 법칙을 통해서 일한다는 것이 뉴턴의 답변이다. 그리고 그 관점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현대 과학이 밝히는 수많은 내용들은 신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연법칙과 작동원리를 설명하지만, 우리는 자연이 존재하고 자연법칙에 따라 질서 있게 운행되는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이 자연세계를 섭리하고 운행하시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스티븐 호킹이 우주의 기원과 역사를 설명하면서 과학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기 때문에 신이 설자리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그의 철학적 해석과 주장일 뿐이다. 반대로 우주의 모든 곳이 신의 자리다. 우주에서 중력과 같은 자연법칙이 작동한다면 그 모든 곳이 자연법칙이 가능하도록 신이 섭리하고 있다. 과학이 밝혀낸 사실은 신의 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을 요청한다. 과학은 자연의 인과관계를 밝히지만 신앙과 신학은 그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밑바탕에서 자연보다 더 근원적인 신의 존재와 섭리와 역사를 믿는다. 


 과학이 신을 대체한다는 두려움은 사실 창조주 하나님을 달을 직접 끌어 움직이는 신 정도로 축소시켜서 오해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자연을 탈-신화화시켰고 자연주의적 방법론으로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를 설명하지만, 자연법칙이 모든 시공간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도록 섭리하는 신을 배제할 수는 없다. 자연현상을 다루는 과학이 자연현상을 초월하는 신에 대해 엄밀한 과학적 주장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호킹과 라플라스는 우주를 설명하는 과학 논문에서 신을 하나의 원인으로 가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신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자연법칙이 동일하게 작동하는 우주의 존재는 창조주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앙이다.



허블 울트라 딥 필드 Hubble ultra deep field @NASA


 우주는 왜 질서 있게 작동할까? 자연법칙이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신론자들은 ‘우주가 원래 그렇다.’며 자연법칙을 우주의 본성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설명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주가 왜 하필 그런 자연법칙들을 통해 운행되는 걸까?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자연법칙이 먼저 존재했다는 뜻일까? 자연법칙이 우주의 본성이라면 우주가 생성되면서 자연법칙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일까? 사실 자연법칙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묻기 시작하면 과학은 잘 답변하지 못한다. 자연법칙은 과학이 가정하는 전제이자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연법칙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한다. 영국의 신학자인 마크 해리스는 [창조의 본성]이라는 책에서 창조세계가 무질서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창조주 하나님이 지금도 섭리하신다고 표현했다. 창세기 1장은 창조주가 무질서에서 질서로 창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2절에 나오는 흑암과 어둠으로 대표되는 무질서의 상태에서 3절부터는 하나하나 질서가 부여된다. 빛과 어둠이 나뉘고 물과 땅이 나뉘고 결국 무질서에서 질서로 창조되는 과정 마지막에 인류가 창조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질서 있게 운행되는 창조세계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창조세계는 언제나 무질서로 돌아가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창조세계가 무질서로 회귀하지 않도록 지금도 우주를 붙들고 계시고 질서 있는 세계로 유지하고 계신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가 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것처럼. 성경이 증언하는 동일하고 신실하고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따라 창조세계를 만드셨고 창조세계가 신실하게 자연법칙대로 운행되도록 섭리하신다.


 과학이 신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존재하지도 않는 괴물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의 두려움과 같다. 과학은 신을 배제할 수도 없고 신을 대체할 수도 없다. 과학이 밝힌 아름답고 질서 있는 창조세계를 통해 우리는 오히려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과학이 신을 요청한다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과학이 다룰만한 자연의 한 원인으로 신을 강등시키는 고대의 신관을 버리고, 과학으로 탐지되지 않는 차원에서 창조세계를 질서 있게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신앙하고 찬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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