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Q] 3. 창세기는 왜 쓰였을까요?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10-21
조회수 358


[과신Q] 3. 창세기는 왜 쓰였을까요?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흔히 사람들은 창세기를 세계가 창조된 과정을 알려주는 책으로 오해합니다. 책의 이름도 한글로는 ‘창세기’이고 영어로는 ‘Genesis’이니, 이 책은 우주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그 기원을 알려주면서 1, 2장을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닙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비그리스도인들도 창세기를 우주의 기원, 지구의 기원, 생명의 기원을 다루는 책으로 오해합니다. 이 세상이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 어떤 순서로, 그리고 얼마나 긴 기간 동안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자연사의 연대기나 우주의 형성과정, 혹은 지구의 나이나 생명체들의 창조과정을 설명하는 과학책도 아니고 자연사에 관한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창세기는 모세의 리더십 아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를 출애굽 시킨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어진 책입니다. (우리를 인도한 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유대 땅으로 되돌아온 제2성전기에도 동일하게 던져집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는 창조물에 관한 책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주에 관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궁창 안에 있었고 그 위에는 물층이 있었으며, 빛을 내지도 않는 달을 광명체로 기술하고, 태양이 넷째 날에 창조되기 전에 이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면서 3일의 시간이 흘렀다고 표현되어 있는 창세기 1장의 내용은 현대과학과 모순되는 부분이 많은 듯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창세기가 현대인에게 주어진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우리를 위한(for us) 책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not to us) 책이 아니라는 점은 성경을 바르게 읽는 첫 번째 중요한 기준입니다. 

창세기 1, 2장은 고대 히브리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책이며 그가 모든 것을 만든 창조주임을 전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시대의 상식과 우주관을 반영하여 창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존 칼빈의 표현을 빌리자면, 창세기는 그 당대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accommodate) 기록되었습니다.

 


창세기 1, 2장이 세계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님을 배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 2장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깨닫습니다. 

긴 세월동안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비롯한 고대근동의 신화들에 익숙했습니다. 그 신화들에 따르면 태양과 달을 비롯한 자연은 신적 존재들입니다. 태양신이나 바다의 신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그 신들은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신화인 [에누마 엘리쉬]를 보면 신들의 세계에서 반란을 일으킨 마르둑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신들을 부역에서 해방하고 자유와 안식을 보장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는 신 중 하나였으며, 인간 위에 군림해서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그의 권력은 고대의 신화들에 의해 정당화되고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10가지 재앙을 통해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신적 존재로 여겼던 자연이 모세에게 부여된 힘에 의해 장난감처럼 이용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신으로 여겼던 자연을 통제하는 모세, 그리고 그 모세를 지도자로 보낸 여호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질문은 포로시대 이후에도 계속되며, 오늘날 우리가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장자, 즉 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한 날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도대체 우리를 인도하는 신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가지고 말입니다. 모세를 통해, 아마도 그 당시에는 구전으로 주어진, 창세기 1, 2장은 고대근동 신화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내용을 전해줍니다. 똑같은 질문이 포로시대 이후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던져집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 앞에 모세의 전승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문자화된 기록이 탄생합니다. 

그 기록은 신이라 여겼던 태양과 달과 바다와 그 모든 자연의 대상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선언합니다. 창세기 1장은 심지어 태양과 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고 그 대신에 ‘두 개의 광명체’라고 표현합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창조물처럼 넷째 날이나 되어서야 창조된 것으로 기록됩니다. 신으로 여겼던 그 모든 자연은 피조물의 지위로 격하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인간을 마치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표현은 생물학적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니고, 기적적으로 창조했다는 식으로 창조의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의미는 인간을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존재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언약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즉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로 창조했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주신 계명이 바로 다음 절인 28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혹은 대리해서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다스리라는 임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문화명령입니다. 고대근동에서 신적 존재로 여겼던 자연, 즉 태양과 달과 바다와 그 모든 대상들이 사실은 신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통치 아래 놓여있으며, 인간의 도움을 통해 보존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창세기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포함한 고대근동신화들은 자연이 곧 신들이고 인간은 그 신들의 노예로 기술하고 있다면, 창세기는 그와 대조적으로 자연은 피조물에 불과하고 인간은 신적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자연은 오히려 인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선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 혹은 그 위상을 알려주는 것이 창세기 1, 2장의 목적입니다. 거기에는 이집트나 바벨로니아의 세계관, 즉 자연이 신이고 인간은 노예라는 그 지배적인 사고 아래 착취당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놀라운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신과 같은 존재이며 오히려 자연을 다스리고 보존해야 한다는 놀라운 선언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인도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1, 2장의 목적입니다.



창세기는 어떤 인과관계나 과정, 순서를 거쳐서 우주가 창조되었는지 설명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우주나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닙니다. 창세기 저자는 그런 내용에 거의 무관심합니다. 과학적 질문을 다루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그런 설명을 간절히 원할지는 모르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이 창세기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포로시대 이후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알려주려는 내용이 아닙니다. 

어떤 책을 읽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글로 기록된 모든 문서는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주목해서 읽어야 합니다. 창세기도 그렇습니다. 창세기가 우리에게 주어진(to us) 책이라는 오해를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주어진(for us) 것은 분명하지만 창세기는 1차적으로 출애굽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에게 창세기가 계시되었을 때 과연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 그리고 그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지 주목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창조주인지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2 0